중국 명조말기에 여곤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호를 신오라 했던 그는 호가 더 널리쓰여 여신오로 더 많이 알려진 석학이다. 철학 도덕 정치 역사 등 각 분야에 걸쳐 언급하고 수신도덕에 관한 실천궁행의 교훈을 논술한 그의 저서 「신음어」는 명대의 명저로 전한다. 그 책속에 나오는 신상론은 4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대입해봐도 과히 흠잡을데가 없다. ◆여곤은 재상을 6등급으로 나눠 평가했다. 사심없고 작위가 없는 재상을 1급으로 꼽았다. 마치 사람들이 햇빛과 공기,물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상시에는 재상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지만 화를 예방해줘 편안케해주는 것이 훌륭한 재상의 소임이라 했다. 머리가 좋다거나 용기가 뛰어나다거나 큰일을 했다는 평판을 받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에게 음덕을 주는 재상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곤도 이런 재상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2급 재상에 기대를 걸었다. 착실하고 민첩하게 일을 처리하고 강직과 직언으로 사물을 논할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물이면 2급 재상감이라 했다. 때로는 예지가 돋보여 저항을 사기도하지만 주장할것을 하고 할일은 해내는 인물이다. ◆나쁜짓은 안하지만 좋은일도 자진해서 안하는 안전제일의 인간을 3급 재상으로 쳤다. 사리사욕을 꾀하고 자리지키기에만 연연한자는 4급 재상밖에 안된다. 입으로만 천하를 논하는자가 이에 해당한다. 권세를 이용해 욕심을 채우고 자기편만 등용하며 사회정의를 짓밟고 국정을 어지럽히는 재상(5급)이 있는가 하면 야망에 불타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파괴적인 속물이 재상(6급)에 오르는 난세도 있다고 여곤은 설파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새로운 총리감을 물색하는데 몹시 고심중인 모양이다. 하마평이 나도는 이들의 면면을 봐서는 이 나라에 인물이 어지간히 없다는 반증도 돼 입맛이 쓰기만 하다. 어쨌거나 대통령은 새 총리를 임명해야 하다. 몇 등급짜리 재상을 골라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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