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독립후 3대 38년 총리직/모친 인디라동생 산자이 이어 세번째 횡사라지브·간디 전 인도총리의 피살로 「네루왕조」의 영광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47년 인도가 독립한이후 네루가문 출신이 아닌 인사가 총리직에 있는 기간은 불과 6년. 나머지 38년동안은 3대에 걸쳐 네루가문이 독점해왔다.
47년부터 64년까지는 라지브·간디의 외조부인 자와할라·네루가,66∼77년,80∼84년까지 두차례에 걸쳐서는 네루가의 무남독녀인 인디라·간디가 인구 8억5천만으로 세계 제2위의 인구대국인 인도를 이끌었다. 인디라·간디의 장남인 라지브·간디는 84년 모친이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피살된 직후 총리직에 올라 89년 총선 패배때까지 그자리에 머물렀었다.
올해 47세인 라지브·간디의 장남 라울·간디의 나이는 불과 16세. 부친의 뒤를 이어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네루왕조」의 시조격인 자와할랄·네루는 인도의 독립을 성취시킨 국부일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나세르,중국의 주은래,유고의 티토 등과 함께 비동맹운동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지도자였다.
미소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던 네루의 외교활동 덕분에 인도는 독립후 불과얼마안돼 제3 세계에서 지도국의 위치에 오를수 있게 됐다. 네루의 뒤를 이은 인디라·간디도 농업경제를 부흥시켰으며 인도를 핵강국으로 성장시킨 공적을 남겼다.
네루왕조의 3대격인 라지브·간디는 비록 정치능력을 의심받았지만 제3세계 지도국으로서의 위치를 견지하면서도 외할아버지와 모친이 계속해서 추진해왔던 사회주의화 정책을 완화하는 등 현실적인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라지브·간디의 폭사는 네루가문에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또 한번 상기시켜 준다.
자와할랄·네루는 일찍이 상처를 한뒤 줄곧 독신으로 지냈으며 인디라·간디는 그녀의 정치적 성장을 못마땅해한 남편과 일찍부터 별거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인디라·간디는 생전에 둘째아들 산자이를 비행기 사고로 잃는 비운을 겪었다. 그녀가 재집권한 80년 자신이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왔던 산자이가 곡예비행을 하던중 추락사했던 것이다.
그녀 역시 84년 경호원에 의해 총격을 받고 암살당하고 말았다. 네루가문에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는 라지브·간디의 폭사로 또 다시 재현됐으며 이는 결국 40년 가까이 지속돼온 네루왕조의 종말을 가져오고야만 것이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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