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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함성/유영종(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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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함성/유영종(아침조망)

입력
1991.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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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게 5월의 나날을 보냈고 지금도 그렇게 보내고 있다. 한 고비를 넘기고 수습의 가닥이 잡혀 가리라는 전망이 있는 반면엔 극렬투쟁의 계속이 예고되는 시국이다.긴장과 불안이 닥치면 떠들썩 하고 시끄럽기 마련이다. 그동안 봇물 터지듯 많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 말속엔 글로 쓰여진 여러 갈래의 주장과 의견이 포함된다. 말이 너무 많아서 대립과 대결이 격화되기도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소모전도 대단하다. 말로만은 아무도 지지 않겠다는 기세가 등등하다.

밀물처럼 밀어 붙이는 말의 내용을 간추리면 극한에서 온건론까지 뒤범벅으로 혼재한다. 정권퇴진과 불순세력의 차단이 양극이라 한다면,누적된 실정의 개혁 요구는 그 중간에서 있다고 할것이다. 극에서 극까지 가히 백가쟁명이라고 할만큼 말은 많다.

대학에선 소자보·대자보의 공방이 이어진다. 교수와 교사들이 연명으로 성명을 내고 사회·종교·문화·지식단체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할 말은 막힘 없이 하고 있다. 탄압과 외압으로 입을 열지 못한다는 신음을 들리지 않는다.

말의 홍수가운데 한두가지 특이한 현상이 주목된다. 하나뿐인 입은 크게 열어도 두개의 귀는 좀체 열리지 않는다. 알아듣는 귀는 틀어 막고 오직 내주장만이 옳다고 소리치는 형상이다.

그런데 백가쟁명의 한복판엔 「말없는 다수」가 버티고 있다. 이 침묵의 대다수는 현실에 관한 의견이 없거나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은 두귀를 넓게 열고 있을 뿐이다. 침묵을 지키는 까닭은 분명하게 있다.

「말을 해야 들어 먹는가…」하는 체념과 냉소감 때문이다.

이 침묵이야말로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과 같이 「소리없는 아우성」이라 할만하다. 침묵의 함성 앞에서 귀를 번쩍 열고 겸허하게 듣느냐 마느냐에 따라 시국의 향방은 달라질 것이다. 귀있으면 들으라는 요구는 어느 때보다 준엄하다.

오늘의 난국을 초래한 청각장애 현상의 실례는 쉽게 짚어진다. 그중 하나가 인사의 실정이다. 현 정권과 연계된 공직인사에 대한 불만은 특히 지식층과 중간층에 팽배하다. 이 불평은 최근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다. 쌓이고 또 쌓여 두꺼운 지층을 이루고 있다. 근거없는 오해라고 발뺌을 해도 사실은 가려지지 못한다.

친정부 계층도 예외가 아니라는 실증이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보수단체라고 할수 있는 자유총연맹과 민자당의 간담회가 열린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까지 인사가 거론되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가 「현직 장관중 47%,차관급은 59%가 TK출신」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드러난 실상과 결과를 우연이다,공연한 불평이라고 맞받아 친다고 납득이 되겠는가. 또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변명은 얼마나 궁색한가. 6공 인사정책의 실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것은 정부·여당이 막무가내로 귀를 막고 있었다는 실증임이 뚜렷하다.

침묵의 소리에 귀를 닫고 있음은 재야나 운동권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노선이 다르거나 달라지면 뭇매라도 가할듯 격렬하게 매도한다. 민주화의 정의의 독점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비폭력의 시위문화를 갈망하는 여론을 「강경진압」 탓으로 외면한다. 평화적인 「무저항의 저항」이 소리없는 지지를 얻는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하고 행동하는 냉철을 왜 보여주지 못하는가. 침묵의 다수를 실망시키면 명분은 껍질만 남는다.

평소에 양순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경우를 흔히 본다. 침묵은 온순과 다르다.

휴화산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뿐,눈과 귀는 언제나 크게 열고 지켜본다. 침묵이 원하는바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읽고 파악해야 안정과 순항이 보장된다. 침묵을 흔들면 사나워 진다. 난국은 극복되어야 하고 전력을 모아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지금은 모양새나 체면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먼저 정부가 두 귀를 활짝 열고 겸손을 갖춰야 수습의 실마리가 잡힌다. 고유권한을 논하고 여당체질이 어떤 것이라고 떠들만큼 한가하지가 못하다. 더 이상 현실인식과 판단을 그르치는 과오를 저지를 여유가 없다.

국정쇄신의 방안은 무엇보다 현실에 밀착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지 막연한 미래 설계나 내놓고 통할시기는 지났다고 판단된다. 비록 개혁작업을 신중히 진행시키더라도 그 의지 표명만은 확고해야 민심이 더 이상의 좌절을 겪지않고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개혁은 추진하는데 의식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구차한 설명은 필요하지가 않다.

위기뒤엔 기회가 온다는 말을 듣는다. 오늘의 난국을 제대로 헤쳐 나가면 병상에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듯 나라의 기운이 되살아 날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앞날은 더 불투명해 진다.

민심이란 어느 한곳에 괴지 않고 늘 흐르는 것이다. 그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갈 길을 열어 주면 격랑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흘러간다. 그것이 살맛을 나게 하는 국정의 요체이다.

시민 대중은 오늘을 살기에 바쁘다.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극렬투쟁은 슬프고 부끄럽다. 말의 소모는 삼가고 귀를 크게 열어 보자.소리없는 함성이 들릴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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