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세종때의 이야기다. 태학 유생이 길에서 황희 정승을 만나자 「네가 소위 정승이 되어서 일찍이 임금의 그릇됨을 바로 잡지 못한단 말이냐」고 직설적으로 면박했다. 그러나 황희 정승은 노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였다. 후대의 사가는 그의 치적을 평가함에,법을 힘써 따르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이치에 따라 규모가 원대했으며 인심을 진정시키는 도량이 있어서 대신의 체모를 얻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국정을 이끌어 가는 자리에 있으면 이만한 조건은 두루 갖춰야한다. 법과 이치를 따르되 시야가 넓어야 하며 민심을 제대로 읽고 휘어 잡는 도량이 필요하다. 이중에서도 도량이 으뜸이다. 그것은 너그러운 마음과 깊은 생각을 뜻한다. 마음이 경직되면 형식과 강경책에 몰입하여 외길만 고집할 뿐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려면 때로는 직언도 무릅써야 하고 세상돌아가는 형편을 정직하게 전달할 의무도 있다. 통치자의 고유권한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민심과 현실을 차단시킨다면 정치가 어지러워 질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을 만난 정치원로들은 과거부터 들려준 말을 들었으면 오늘의 난국이 이처럼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청와대 주변의 강성에 대해 여당내에서도 불만이 있는듯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밀고 나가면 되는데 왜 잡음을 일으키느냐는 투라면 곤란하다. 보좌의 기능은 가급적 밖의 의견을 많이듣고 자기 주장은 삼가는게 순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인심을 가라앉히는 현책을 짜내는 노력을 경주함이 마땅한 사명이기도 하다. ◆강경책은 언제나 긴장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력이 득세하면 난국이 온다는 사실은 건국이후의 정치사가 실증해준다. 법과 질서를 강하게 유지하려면 도량있는 정치력이 병행되어야 실효를 거둔다. 우리 정치가 각박하게 흐르고 있음은 도량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외투를 벗기는 것은 사나운 바람이 아니고 뜨거운 태양임을 거듭 생각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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