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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와 투쟁은 별개이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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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와 투쟁은 별개이다(사설)

입력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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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고 슬픈 일이다. 젊은 원혼이 마지막 가는 길마저 가로막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맞붙어 어지럽혀야 하는가. 이것이 과연 국민의 애통과 망인의 넋을 달래는 경건한 장례의식일 수가 있는가. 비극적인 죽음이 영원한 안식을 못찾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우리가 이렇게 거칠게 방황해도 되는 것인가.장례는 장례일뿐,시위나 저항일수가 없으며 또한 저지와 진압의 대상도 아니다. 고 강경대군의 장례도 예외일 수없다. 살아 있는 자,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가는 길에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여야 할뿐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삼엄한 경비와 극렬한 감정의 충돌로 서울시청앞의 노제가 무산되고 어이없게도 장례는 무기연기 되었다.

치사 분신 장례로 한발짝 움직일 때마다 시국은 첩첩 산중으로 빠져 들기만 한다. 운구행렬은 기어이 노제를 강행해야 한다고 굽히지 않고 정부는 못한다는 강경태세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예측못할 끝장을 보자는 것인가.

노제를 꼭 해야 하는지 꼭 막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따질만큼 여유도 없고 한가하지도 않은 긴박한 상황이다. 그만한 시비는 가릴 필요조차 없다. 장례는 장례대로 치르면 된다. 가두투쟁은 산 자의 몫이지 죽은 사람은 참여못한다. 영혼이나마 고이잠들게 해주는 것이 애도의 도리이며 장례의 기본이기도 하다. 굳이 거리로 나올 까닭이 없다. 장지만이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볼모로 한다는 오해의 소지는 결코 허용못한다.

먼저 운구대열에 바란다. 장례는 조용하게 치르는 것이 인륜이며 의무이다. 가두투쟁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단상의 재야」에게도 당부하고자 한다. 원로답게 사리를 분별하고 할일과 막을일을 가려주는 경륜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분신을 안타까워 하는 처절한 심경으로 장례투쟁은 몸으로라도 막는 용단이 있어야 한다. 야당정치인들에게도 똑같은 고언을 전달하지 않을수 없다. 기성세대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이 따라야 마땅한 일이다.

이토록 사태를 악화시킨 1차적 책임은 역시 6공 정권에게 돌아가야 한다. 안이하고 경직된 현실인식으로 강경으로 몰고간 결과가 결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이 시국을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가라앉으면 후속 조치로 민심을 안정시키겠다는 속셈은 빨리 청산 되어야 한다.

과감하게 나서서 시국 타개의 길을 모색하고 시급하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고비를 넘기면 또 험난한 고비가 나타나는 법이다. 아무리 명의라 하여도 시기를 놓치면 효험은 기대하지 못한다. 때늦어 후회함이 없도록 최선의 방안을 대담하게 내놓지 못하면 난국은 헤쳐 나가기가 점점 암담해질 뿐이다.

지금의 사태서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일단 국민에게 맡겨 두라. 정부나 재야운동권 세력이나 「구국」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와 언동이 절실하기만 하다. 젊은이의 원혼을 고이 잠재우고 살아 있는 국민의 삶에 희망을 심어줌이 시급하기만 하다. 괴로움과 슬픔을 계속 끌고 갈수는 없다. 지금 긴박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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