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미·소의 탈냉전으로 대전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그러나 국내는 냉전체제의 유물인 브링크맨십(전쟁일보 전 전략·BRINKMAWSHIP)에서 탈출치 못하고 있다. 탈출은 커녕 오히려 더욱더 이것에 묶여있는것 같다.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가. 정치,경제,사회 등 구석구석마다 「죽든 살든 어디 누가 이기나 벼랑끝까지 가보자」는 이 첨단대결 자세가 팽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주주의 「예술」이라는 협상과 타협은 설땅이 없다. 그 결과를 지금 우리가 호흡하고 있다. 정치는 대권의 소모전이다. 경제는 투기,폭리의 무대다. 사회는 생존의 정글이다. 이런 동시 다발적인 병리현상에 대한 진단은 나와있다. 경제성장과 정치발전 과정의 「과도적 현상」이라는 것이다.또한 처방도 알고있다. 힘의 공유와 부의 공정한 분배다. 역사란 것도 따지고 보면 「힘과 부」의 배분 싸움이다. 문제는 힘의 「공유」 형태 즉 누가 누구와 어느정도 어떻게 나누어갖느냐 하는 것이다. 부의 배분 문제도 마찬가지다. 또한 과도기는 될수있는대로 빨리 졸업하는것이 상책이다.
6공의 과제는 이 복합적 병리현상의 조속한 치유다. 역사적 평가도 여기에 달려있다. 국민이 부여한 이 과제를 풀어가는데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도력과 정치역량의 발휘가 요구된다. 대통령 책임제 아래에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책임질수 밖에 없다. 그는 또한 컨센서스(국민총의)를 유도하든가 아니면 다수의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대통령이 인기에 영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론에의 역행은 통치권의 소모전이 될 위험이 있다.
지금 6공이 맞고있는 「치사시국」은 극히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노대통령이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치사에 대해 정중한 사과 등 일련의 선제적인 대응조치를 취했더라면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대통령은 강경노선을 선택했다. 「범국민대책회의」와 여당이 요구하는 ▲백골단 해체 ▲노재봉내각의 총사퇴 등을 정면거부했다. 정부는 또한 강군 치사에 뒤이은 분신자들의 장례와 시위를 주동해온 「범국민대책회의」의 간부들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노대통령의 강경대응은 현 사태를 『일부 극렬세력들이 한 대학생의 죽음을 불모로 학생,노동자를 선동,사회혼란을 야기시켜 궁극적으로 체제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보는데서 나오고 있다. 현시국을 이처럼 『일부 극렬세력들의 체제전복기도』로 규정한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공안정국의 연장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이러한 진단이 한부분만의 관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유의해야하는 것은 6공의 누적 실정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불만이 경계수위에 와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명파가 불어나는 초·중·고·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러한 불만의 표출이다. 정부와 재야·운동권 학생들 사이에 중립을 지키고 있는 국민 다수들도 심정적으로 이에 동조한다. 노대통령은 바로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정권의 전복에 따른 혼란을 원치않는 국민의 대다수는 이 간과가 파국의 기폭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일부 극렬세력」들은 6공의 이 맹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침체의 늪에 빠졌던 학생운동권은 활력을 되찾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민중정치」의 대의는 국민주류에 소구력을 가질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물을 찾았다. 또한 독립적이었던 전민련·전교조,전노련,전대협 등 혁신계 세력들이 규합의 기회를 갖게됐다. 브링크맨십 외교전략의 실현자인 존·포스터·덜레스 전 국무장관(아이젠하워 행정부)은 『전쟁에 빠져들지 않고 벼랑까지 갈수있는 능력이 필요한 기술』이라 했다. 지금 6공에 필요한것은 국민 다수의 지지회복이다. 경제적 형평,정치적 민주화,지방색의 타파 등 일련의 개선책이외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일부 극렬세력」을 국민 주류로부터 차단,이들에 대한 그의 브링크맨십을 성공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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