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구행렬 온종일 노상대치/신촌·이대입구등 10만 몰려강경대군 영결식이 열린 14일 발인을 마친 장의행렬이 서울 시청앞 노제가 무산되자 원래 시신이 안치됐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져 강군 장례의 원만한 진행여부가 새로운 초점이 돼버렸다. 이날 장의행렬이 12시간 이상 서울시청앞 노제문제로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국민들의 이목은 장례의 진행에 쏠렸고 온종일 긴장과 충돌이 계속됐다.
이날 경찰은 전례없는 대규모 전경대를 동원,신촌 연희동 일대를 비롯한 도심의 주요 골목까지 원천봉쇄하는 새로운 시위차단 양상을 보였다.
이날 전국의 시위군중은 서울 10만,광주 1만,부산 1만여명 등 15만여명으로 추산됐다.
▷연세대 복귀◁
영결식과 신촌로터리 추모제를 마치고 시청앞으로 향하던 장례 행렬은 이화여대 입구에서 경찰의 완강한 저지에 부딪혀 서울시청앞 노제강 불가능해지자 밤10시20분께 연세대로 복귀했다.
하오 6시30분께부터 3시간여동안 대치상태가 계속되자 대책회의는 현장에서 회의를 갖고 하오 9시15분께 장례위원장 문익환 목사를 통해 『애국시민들의 동참으로 오늘의 투쟁은 일단 목표를 달성했다』며 『시청앞 노제없이는 장례를 못치르겠다는 유족들의 입장을 감안,일단 연세대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따라 운구행렬 1만여명은 연세대 구내로 들어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관을 안치해놓고 철야했다.
대책회의는 15일 낮 시청앞서 노제를 치르기위해 상오9시30분 연세대를 출발,재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제공방◁
시청앞 광장 노제에 앞서 최근 분신·사망한 「6인 열사추모제」를 갖기위해 신촌로터리로 향하던 행렬은 낮12시20분께 명지대에서 1㎞ 가량 떨어진 홍남교에서 경찰의 저지에 부딪쳐 3시간20여분 동안 대치했다. 경찰은 좁은 도로사정과 주변에 전·현직대통령 사저가 있다는 이유 등을들어 수색방향으로 우회토록 요구했으나 대책회의측이 연희동 방향을 고집하며 몸싸움으로 밀어붙이려 하자 다연발 최루탄을 쏘면서 저지했다. 이에따라 운구행렬은 하오3시40분께 수색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6시께 신촌로터리에 도착,30여분동안 추모제를 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로터리 사방 5백여m 이상 도로는 10만여명의 인파로 완전히 뒤덮였다.
행사가 끝난 하오6시30분께부터 도심으로 향하던 행렬은 이화여대 입구에서 경찰에 저지당한채 밤늦게까지 대치했다. 학생들은 다연발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돌을 던지며 맞섰는데 하오7시30분께는 한때 경찰이 아현동 고개부근으로 밀려 페퍼포그차량 4대가 시위대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에앞서 하오2시께 연희로터리에서 학생 5천여명이 연희동 방향으로 가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1시간여동안 돌과 화염병을 던졌으며 이중 일부가 인근 경의선 철로에서 시위,하오3시부터 10분간 철도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경찰과 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하철 등을 이용해 도심으로 진출,하오8시30분께 1만2천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신세계백화점 앞길과 명동·종로에 집결,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시청앞 광장 진입을 시도하면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영결식◁
강군 영결식은 상오 9시30분께 명지대 대운동장에서 범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하는 「민주국민장」으로 2시간동안 치러졌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김대중 신민당총재 이기택 민주당 총재 이재오 민중당 사무총장 등 야3당 당원과 신창균 전민련 상임의장 권종대 전농의장 백기완씨 등 재야단체인사 김종식 전대협의장 등 학생 시민 1만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상오 11시30분께 참석자들은 대형 태극기와 영정을 앞세워 선도차,영구차,2백여개의 만장순으로 신촌로터리를 향해 떠났다. 이에앞서 상오9시께 명지대 소강당에서는 유족들이 참석,30분동안 발인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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