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정국의 결정적 변수는 역시 중산층·중간계층의 향배에 달려있다고 할수있다. 대충 국민의 과반수선 안팎을 점하고 있다고 볼수있는 이들 계층이 어떤 생각과 어떤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에 따라 정국의 흐름이 달라질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나 야당은 말할것도 없고 재야나 운동권까지도 이들의 여론추이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특성인 「안정속 개혁」이라는 시국관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부·여당쪽이 덜 쫓기고 있는 판세라고 볼수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이들이 87년6월 5공 독재에 보인것과 같은 격렬한 적개심을 아직 표출하지는 않고 있고,현시국을 정권퇴진으로까지 몰아 붙이는 것은 무리하고 온건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허나 실정·비정에 관한 불만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높을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5공때는 독재종식의 문제만 전념했지만 지금은 상대적인 기대심리까지 겹쳐 다양하고 복합화된 경제·사회적 욕구불만이 쌍여가고 있으며,지금은 참고 있을지 모르나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그 누적된 불만이 분출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아무도 정확한 예측을 내리기가 어렵다. 예컨대 6공의 대표적인 실패하는 경제정책 면에서 지지계층을 하나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것이 아니냐는게 일반론이지만,그중에서도 중산층이 가장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중간계층은 국가사회를 위해 가장많은 기여를 했으면서도 가장 헤택이 적은 계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증시에서는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피해자의 주류이고,부동산 정책에서는 혜택보다 견제를 더받고 있으며,교통난과 관련해서 자동차 메이커나 도로 증설을 책임진 정부는 놔두고 어렵게 장만한 소형 마이카때문에 구박만 받는다. 가장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면서 중산층보호책이 나오는 것을 보지못했다. 그러나 위기가 올때마다 「안정희구세력」 「말없는 다수」 운운하면서 위기모면의 방패로 이용될뿐이다. 그러나 계층성격의 특성상 흐트러져 있고 결집이 어려워서 그렇지 잠재력이 가장 큰 계층임을 무시할수는 없다. 설사 이들이 당장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이 잠자고 있는 것으로만 보아선 안된다.
정부가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사태를 호전시키지 못한다면 실망한 중간 계층의 민심이반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불안정을 싫어하기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것도 싫어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장 혜택을 받고 있는 재벌 계층이 더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영세민의 불만이 고질회된 형편에서 중간계층의 대정부 신뢰까지 더 악화된다면 그것은 더욱 다양한 형태의 후반기 누수현상으로 나타날수가 있다.
또 각종 선거에서 여권의 기반을 급격히 붕괴시키는 투표혁명의 서단을 열어 갈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14일에 있을 강경대군 장례에 「시민」이라고 통칭하는 중간계층이 얼마나 참여·동조할것인가 적지않은 관심을 가질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한열 장례때의 「1백만 인파」는 다시 재현되기가 쉽지않은 사회 분위기기 때문이다.
허나 장레식에 냉담한것보다 더 냉정하게 우물쭈물하는 정부를 지켜보는 국민중의 대다수가 중간계층의 성난 눈동자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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