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인척… 서울밀사 소문도/북 대남정책엔 큰변화 없을듯지난 11일 저녁 지병으로 사망한 북한의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은 그동안 북한외교의 대들보로 활약해온 인물.
김일성의 먼 친척뻘인 허는 지난 48년·외무성참사로 외교계에 발을 디딘뒤 지금까지 40여년간 정무원 부총리겸 외교부장·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북한외교의 얼굴마담역을 맡아왔으며 83년 12월에는 대남 사업담당 노동당비서로 발탁되면서 당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또 이듬해인 84년 1월부터 조평통 위원장직까지 겸임했지만 우리에게는 비교적 온건 이미지를 주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허의 사망으로 북한외교·대남정책에 변화가 올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허는 이미 89년말께부터 와병설이 나돌았으며 지난해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 개막식에 참석한 뒤 지난 1년간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 1년간 조평통 위원장직은 부위원장이며 지난해 5월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심의위원장인 윤기복이 맡아왔고,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직도 당의 국제담당비서로 발탁된 김용순 당국제부장이 거의 대신맡아 해왔기 때문에 북한외교의 특별한 노선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허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담당하면서 남한측 인사들과도 많이 만났다. 89년 1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때 금강산 공동개발에 합의한바 있으며 그해 3월에는 밀입북했던 문익환 목사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2시간의 밀담을 갖고 김씨를 평양에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또한 88년 8월 서경원 전 의원의 방북때도 그를 만났으며 89년 8월에는 당시 평양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양을 만나기도 했다.
허는 5공·6공의 북측 밀사로도 자주 소문에 올랐다. 5공때인 85년 9월과 6공초기인 89년 2월의 서울 방문설이 떠돌기도 했으며 6공초기에는 박철언 당시 정무제1장관과 제3국에서의 비밀접촉설이 나돌았었다.
서울태생인 허는 모스크바대에 유학중,김일성의 고모의 딸인 김정숙과 결혼했다. 48년 졸업후 돌아와 이 인척관계를 바탕으로 48년 외무성참사로 외교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이후 60년 외무성국장,70년 외무상,72년 정무원 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70년대 비동맹외교를 성공시켰던 허는 80년대에 들어와 오랜 외교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일에게 「대외개방과 대남온건노선」을 자주 건의해 김중린 등 대남강경파와 알력을 빚기도 했다.
허의 사망으로 조평통 위원장엔 윤기복,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엔 김용순 당국제부장이 유력시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북한외교와 대남정책은 「허의 전인시대」가 끝나고 김정일 주도하에 전문외교관과 당료들의 「총체외교」가 될것으로 보인다.<남영진기자>남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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