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자살” “그럴 이유없다” 맞서/검찰 부검강행 겹쳐 사태 더악화 가능성/구치소 부상경위도 의혹 싸여수감중 부상으로 입원차료중이던 부산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31)의 석연찮은 죽음이 5월의 비상시국에 새로운 불씨로 커져가고 있다.
수사를 맡은 수원지검,경기도경은 박씨의 죽음을 「단순자살」로 단정,신속하게 부검까지 실시해 이 사건이 강경대군 치사사건처럼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고 박창수위원장 옥중살인 규탄 및 노동운동 탄압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 대책위원회」는 구치소에서의 부상경위,병원에서의 사망경위에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7일 상·하오 시체인도 문제를 둘러싸고 경찰과 노동자·학생들이 충돌,다수의 부상자가 생기고 경찰이 영안실벽을 부수고 시체를 확보해 「강제부검」 하는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박씨 사망문제는 시국의 진전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까지 짙어졌다.
서울 구치소측은 박씨의 이마가 4㎝가량 찢어진데 대해 구치소의 아침운동시간에 창틀에 낀 공을 꺼내려다 벽모서리에 부딪쳐 다친 것이라고 말했으나 대책위원회측은 재소자들과의 면회를 토대로 『박씨가 강군사건·노동운동 탄압에 항의,1주일간 단식농성한 뒤 항의표시로 철봉대에 머리를 받아 자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원회는 또 1주일간 단식농성한 박씨가 아침부터 공놀이를 했을리가 없으며 교도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치소측은 박씨의 농성참여 사실을 부인하면서 농성재소자들에게는 운동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이 주장을 일축했다.
이마의 상처에 대해서는 사망전의 박씨를 만난 사람들까지 엇갈린 증언을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구치소 면회,병원문병을 자주 다녔던 한진중공업 노조사무국장 장세군씨(33)는 박씨가 부인 박기선씨(30)와 자신에게 『단식농성을 하고 있으나 교도소내 투쟁에 심리적 부담과 한계를 느낀다』,『이마에 난 상처는 항의표시』라고 말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박씨의 담당의사였던 안양병원 신경외과의 이충선씨(41)는 이와달리 『박씨는 수출전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구치소에서 장난하다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가족들과 대책위원회측은 박씨가 제3자인 의사에게 한말에는 별로 비중을 두지않은채 박씨의 죽음을 무리한 구속 등 노동운동 탄압에서 비롯된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당국은 박씨의 죽음과 그 동기에 대해 ▲항거표시로서의 투신자살 ▲병원탈출 기도중 실족사 ▲머리부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우발적 사고 ▲타살 등 여러갈래로 수사를 하고 있으나 대책위원회측은 박씨가 링거병을 들고 있었고 6층에서 떨어진 점을 지적,탈출이나 실족사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또 박씨의 성격,가족관계로 미루어 보더라도 자살할 만한 이유가 없으며 유서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이 사인문제가 쟁점이었던 박씨 사건은 시체탈취와 그 과정에서의 충돌로 말미암아 공권력집행의 적정성 문제까지 겹쳐 어떻게 사태가 진전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검찰,경찰은 구치소에서의 상황에 대한 공개와 확인 등 진상규명 노력을 해야하겠지만 당장 전노협 등으로 구성된 노동자 대책위가 9일로 예정했던 전면투쟁 돌입일정을 8일로 다시 앞당기는 등 박씨 사건은 노학 연대투쟁의 새로운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태성기자>고태성기자>
◎박창수씨 주변/86년 해고자 복직투쟁 계기 노동운동 투신/작년 7월,위원장 당선후 전노협 간부 겸임
숨진 박씨는 민주노조가 붐을 이룬 87년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전에는 가정적이면서도 동료간 우의가 남다른 평범한 근로자였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박씨는 87년 7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파업에 참여한후 「7·25동지회」 「상록회」 「백두회」 등 사내 소모임을 이끌어 오다 지난해 7월 93%의 지지로 위원장에 당선된 뒤 전노협 산하 부산지역 노조총연합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79년 부산기계공고를 졸업,81년 입사한 박씨는 기관실공사부와 배관제작부 등에서 배관공으로 일 했는데 86년에 입사동기인 김진숙씨(31·여) 등 3명이 해고되자 복직투쟁에 참여,「동료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노동운동 투신의 직접적 동기였다는 것이 주위의 설명이다.
회사측으로부터 전노협 및 대기업 노조연대회의 탈퇴를 종용받았던 박씨는 구속 수감후 『회의에 한번 참석한 것이 이토록 큰 죄가 되는줄 몰랐다. 노동운동 탄압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전노협 관계자들도 『박위원장은 연대회의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노동전과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달 1일 휴직처분된 박씨는 부산 남구 문현1동 72에 보증금 2백만원 월세 6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부인 박기선씨(30)와 아들 용찬군(4),딸 예란양(2) 등과 살아왔으며 어머니 김정자씨(55) 등 부모와 형제들은 경기 성남에 살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