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국은 바람잘날 없는것으로 유명하다. 풍파에 어지간히 단련된 그런 정국이지마는 연조이래 꼬리를 물고오는 격랑에 견디어낼지 불안하다.「치사」에 이어 「분신」으로 치달은 작금의 시국은 말없는 다수의 숨을 죽이게 한다. 다수는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다. 고무풍선처럼 긴장이 부푼 현 시국의 캐스팅보트는 이 다수가 쥐고 있다.거리의 시민의 향배에 따라 시국의 상황은 달라질수있다. 그 만큼 시민의 양식이 무거워지는 시기다.
정치권에 역량이 있다면 애초부터 「치사파문」이 지금처럼 파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6월 광역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당략에 따른 정치싸움의 강도는 높아지기 쉽다.
정부·여당의 대응은 강경대군의 사망경위 발표,내무장관 문책,집시법 개정,시위진압방법의 완화 등 문책단행과 실무적 운영의 개선방안을 내놓는 선에서 사건수습을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야권의 주력인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책임있는 원내정당으로써 모든 문제를 원내로 수렴하되 재야세력과는 제한적으로 연대한다』는 원칙을 제시,기존체제내의 야당당수로서 성숙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당무회의는 정국수습책으로 ▲노재봉내각 총사퇴 ▲백골단 해체 ▲집회시위 자유보장 ▲내각제개헌 포기선언 ▲개혁입법 조속처리 등 5개항을 제시했다. 이것이 수용되지 않으면 오는 11일 대전집회를 출발로 장외로 나가겠다고 했다.
김총재의 발언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들린다. 민자·신민사이에 합의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이슈들도 끼여있다.
따라서 양정당의 타협에 의한 현시국의 타결은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치사시국」의 주도권은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가 잡고있다. 유족들도 『모든 문제를 대책회의와 협의,결정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연일 대규모 집회·시위를 주도,후원하면서 대정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대책회의는 전민련·전노협·전교조 등 국민연합 산하 17개 단체,전대협·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명지대 동문회 등 모두 54개 단체가 참여,범국민단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8일까지 ▲백골단 해체 ▲강군 사망과 관련한 책임자 구속처벌 ▲국가보안법 등 악법폐지 ▲공안정국종식 등 5개 조건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9일을 「민자당 해체의 날」 로 선포하고 전국에서 집회와 가두시위를 갖겠다고 했다. 따라서 9일이 현 시국의 태풍이 될것으로 예상된다. 강군의 치사사건에 대한 「범국민단체」의 일련의 대정부접근 자세는 처음부터 정치적이다. 일반치사 사건이면 사인규명,범법자 법적처리,보상합의,장례의 수순으로 처리되는 것이 상례다. 「범국민단체」는 당초에는 지난달 29일 연세대에서 열린 「범국민대회」를 마친후 장례일정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뒤로 미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잇단 집회 및 시위에서 자신감을 얻게됐다는 것이다. 즉 범야의 결속강화와 거리의 투쟁열기를 지속시켜보자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군의 시신이 「범국민대책회의」의 정략적 「볼모」가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비상한 처방이 아니면 국민적지지를 끌고 갈수 없는 대의는 뜻을 상실한 것이거나 아니면 시기상조인 것이다. 한편 「범국민대책회의」의 주도권을 무력케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노태우대통령 자신이다. 노대통령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보고형식을 빌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유감의 뜻을 표했다. 강군의 유가족은 정중한 사과가 아쉽다고 했다. 우리국민성은 감성이 강하다. 통치권자라도 국민에게 사과할 일이 있으면 같은 값이면 공식적으로 격식을 갖추는 것이 진지성을 높여준다 위기관리에서 너무 늦거나 너무 미온적인것은 효과적인 처방이 아니다. 말없는 다수는 리더십의 발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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