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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체제에 막다른 길목/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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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체제에 막다른 길목/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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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최종적 자유」『자살은 생각은 평생 내 머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에게 힘을 줬다』고 철학자 시오랑은 말한다. 루마니아 태생인 시오랑은 스물여섯살때인 1937년 고국을 떠나 여든나이가 되도록 파리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셈이다.

『자살의 가능성이 없다면 나는 벌써 오래 전에 내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그는 재작년말 회고했었다. 그는 자살이 「긍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한다. 『당신은 원한다면 어느 때고 자살할 수 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서두르는가? 진정하라』고.

시오랑에게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다. 사람은 『오직 죽기위해서 살고 있다』고 그는 본다. 그래서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든 삶을 끝장낼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그는 설명한다.

시오랑은 단정한다. 『인생을 지탱할수 있는것은 우리가 언제고 인생을 벗어날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살은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자유로운 행동이다』

자살을 긍정적으로 보는 철학자 시오랑에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지렛대와도 같다. 결국 자살은 죽는 순간까지 서둘러서는 안되는,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결국 선택할수 없는 「최종적 자유」가 된다.

온 세상이 떠들썩한 「분신자살」 정국에 우리는 차우셰스쿠 1인 통치 24년에 황폐화된 조국을 잊지 못하는 한 철학자의 자살예찬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살은 결국 「가능성」으로 남아야된다는 예찬론이다. 죽음을 택하라만한 용기로 과연 살아서 현실과 대결해봤는가 하는 물음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들어 비틀거림이

그러나 지금의 위기와 혼란을 오직 「분신자살」 정국으로만 단순화시킨다면 현실을 잘못 짚었거나,현실을 어물쩡 덮어버리는 잘못이 될 것이다. 갓 스물의 한 젊은이가 전투경차의 뭇매로 죽은데서 시작된 지금의 위기와 혼란은 그 겉모습이 87년 봄의 위기와 혼란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 한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있을수 없는 충격적 사건일뿐 아니라,5공화국의 악몽을 재연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커졌다고 볼수있다. 그런 뜻에서 강경대군 치사사건은 6.29선언으로 길이 열린 새로운 체제의 좌절이요,그것이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점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정치를 6·29체제라 한다면 올들어 그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중병을 앓아왔다. 국회의원의 소위 「뇌물외유」로부터 시작해서,소위 「수서택지사건」은 우리가 다시 5공화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나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권력과 기업의 유착은 수돗물에 페놀이라는 화학폐수를 쏟아넣었고,근로자들이 나치가 썼던 것과같은 독가스에 쓰러지는 비극을 쉬쉬해 왔음이 드러났다.

국민적 화합좌,점진적 개혁의 이름아래 「6공화국」의 깃발을 내걸었던 6·29체제는 올들어 더 이상 스스로 걷기 어려울만한 중병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데에 우리의 문제가 있다.

아마도 6·29체제의 비틀거림은 이미 지난해에 예정된 일이었다고도 할수있다. 어느날 갑자기 3당 합당이라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더니 거대 여당은 국회에서 예산안과 법안을 날치기 무더기 통과 시켰었다. 정부는 국민과의 공개적인 토론절차도 없이 막강한 민간방송 일방적으로 꾸며내놓았다.

○국민에 새로운 희망을

또 있다. 5공화국때 물러났던 사립대학의 「경영주=총장」들이 슬그러미 일부에서 현장복귀하더니,거리에는 다시 화염병과 최루탄의 격전이 부활했다. 강경대군 사건만해도 명지대학의 등록금 시비가 대학경영 내막공개 시비로 발전해서 터진 비극이었다.

이 나라의 대항이 언제까지 구멍가게 개인회사처럼 「경영」돼야 하는가? 명지대 당국을 포함해서 이 문제에 해답을 주는 사람은 이 순간 보이지 않는다.

또,한때 당연한 것으로 예정됐던 경찰 중립화는 3당 합당과 함께 지난날의 꿈으로 사라졌다. 위기의 한쪽 근원이 경찰이라면 당연히 논의해야 되는데도 오히려 민자당은 경찰 중립화와 거리가 먼 새 경찰법을 밀고 갈 방침인것 같다.

지금의 혼란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학생·재야·여야 정당 그리고 정부 등 위기인식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화염병이 쇠파이프를 부른다는 식의 얼치기 「양비론」으로는 매듭을 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6·29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 나라가 한발짝 전진해야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것이다.

땅투기가 일으킨 엄청난 빈부의 구조화,부의 도덕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금융실명제의 포기에 이르기까지 6·29체제의 근본적인 반성·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적 화합과 점진적 개혁에 지지를 보냈던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을 위해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또 한번 뛰던 발걸음을 멈추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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