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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모순은 의롭고 선하게 고쳐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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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모순은 의롭고 선하게 고쳐가야”

입력
1991.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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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의 호소/문제해결없이 한만 남겨/합리와 이성으로 풀도록학부모들은 아들들의 분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비통해하고 있다. 이유와 처방은 그 다음의 일이다. 분신학생들이 몸을 불살라가며 남겼던 유서가 정권에 대한 투쟁을 적고있지만 부모에게 이들은 「평생의 한」이 될 젊은 자식들이다.

안동대생 김영균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3)가 『영균이를 열사라고 부르고 영웅시하면 또다른 비극을 부른다』고 한 한마디가 부모들의 애끓는 심정을 웅변해주고 있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분신학생들이 선택한 문제 해결방식이 결코 용기가 아니라 순간의 격정이며,이들 젊은이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갈구했던 사회정의는 오히려 합리와 이성으로 풀어야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제발 깨달아 달라는 것이다.

5공의 강권정치가 한창이던 지난 86년 함께 분신자살했던 서울대 김세진군과 이재호군의 어머니 김순정(55)·전계순씨(54)가 아들의 5주기를 추도하며 오열하는 모습은 지난 4일간 계속된 세 학생들의 아까운 희생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호소다.

『얼마나 분하고 답답했으며 제몸에 불을 지르겠습니까. 그러나 죽어서는 안돼요. 그래서는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가족들에게,이웃들에게 한을 남길뿐입니다』

박신호씨(54)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이제 사회의 슬픔이 되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비참하게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지금이라도 분위기를 추스려 가라앉혀야 한다』고 잇단 비극을 안타까워했다.

학부모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건강해야할 집단인 대학생들에게서 자해의 극한 행동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하려는 풍조가 번지는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연세대 4학년의 딸을 두고있는 유이중씨(56·회사원)는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은 뒤집어 말하면 전체를 위해 개인의 생명을 희생해도 괜찮다는 무서운 모순을 안고있는것 아니냐』면서 『젊은 학생들이 잠시만 시각을 돌려 불의에 항거하는 진정한 용기는 살아서 인내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또 아들이 신입생인 안경희씨(46·주부)는 『생명은 하나뿐이며,가족과 친구 이웃들이 함께 가지는 것』이라고 자제를 강조하면서 『지성인들이 제발 이성을 되찾아 우리에게 불행한 아픔을 더 느끼지 않도록 해달라』고 지성인들의 연대책임까지를 거론한다.

공무원인 문병철씨(50)의 안타까움은 기성세대의 반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젊음을 스스로 죽음으로 내몬 것은 기성세대가 이들에게 희망의 단서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 문씨는 『나서더라도 우리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느끼지만 학생들은 제발 목숨이 마음대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학생들의 비참한 죽음은 부모들에게 곧바로 절망과 슬픔이다.

부모들의 마지막 말은 모두 『제발 이런 비극은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조재용기자>

◎정치권의 자괴/계속표류땐 사회위기/당략떠나 머리맞대길

정치권은 해결책없이 시국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젊은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무력감속에 자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태의 원인이나 처방을 놓고는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있지만 시국인식의 심각성이나 이에대한 자책감은 당파를 초월하고 있다.

민자당의 서울출신 한 중진의원은 『느낀대로 얘기하자니 여러입장이 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야당의 한 의원은 『참담한 심경이며 도대체 정치를 계속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마저 생긴다』고 털어놓는다.

이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정치권이 또다시 제할일을 못할 경우 사회전체에 위기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터졌을때만해도 원인과 처방을 둘러싸고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지만 박승희양에 이어 김영균·천세용군으로 분신이 이어지자 정치권 전체에 쏠리고 있는 따가운 비난이 우선 피부에 와닿는 모습이다.

학생들의 자제만을 호소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차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할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한것이다.

민자당의 오유방의원은 『잇단분신이 국민에게 줄 충격과 심리적 좌절을 생각해 정치권이 좀더 진지해야 한다』면서 『기성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사태확산의 원인중 하나』라고 정치권의 책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신민당의 한광옥의원은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꽃다운 젊음의 죽음을 막지못한데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사회전반의 누적된 불만과 여러 모순점이 폭발하고 있는만큼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이철의원은 『정치인이라는 이유때문에 오히려 사태수습에 나설 능력이 부족함을 새삼 느낀다』고 얘기했다.

여권은 개혁입법 협상과 전경운영제도의 개선 등을 접점으로 출구를 찾으려하고 있으나 내각총사퇴와 사복체포조(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하는 야권의 공세는 갈수록 강해져만가고 있다.

또 원인규명을 놓고도 야권은 여권의 공안통치드라이브가 난국을 초래했고 그 근본배경은 3당 합당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여권은 무절제한 시위풍토와 현장진압의 무리가 참사를 가져왔으며 잇단 분신은 학생들의 순수성이 잘못 분출된 결과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야 지도부가 대국적 견지에서 난국수습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야권은 이미 노태우대통령이 사태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해놓은 상태이고 당략적인 차원을 떠나 정치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국민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여야를 막론하고 많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여권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하고 야권을 정파적 자세를 떠나 구국의 일념으로 위기수습에 임해야 한다는게 이들이 주문이다.<이병규기자>

◎스승들의 당부/자살,용납할수 없는 모순/죽음 연쇄작용 큰 위험성

『이번엔 또 어느대학 학생이…』

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을 계기로 사랑하는 제자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충격과 비통속에 휩싸인 전국 2만5천여 교수들은 제자들의 이성회복과 자제를 거듭 당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승이자 기성세대로서의 뼈저린 자성과 이 엄청난 사태앞에서도 무기력함만을 보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 등이 뒤범벅이 돼 교수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내일을 이끌어갈 세대로서 사태를 냉정히 보고 제발 목숨만은 끊지 말아야한다는 교수들의 호소는 차라리 절규로 들린다.

서울대 한완상교수(사회학)는 『생명은 인간가치 가운데 가장 소중하며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는 것』이라면서 『이 사회의 구조적 비리와 모순을 죽음이라는 수단으로 풀어가려는 학생들의 시도는 비극이자 자기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하용출교수(외교학)는 『학생들이 갖는 울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학생들의 현명한 판단을 역설했다.

우리사회의 모순을 보는 학생들의 시각이 옳다 하더라도 분신자살의 극단적 행동은 모순시정의 목적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수 없다는 설명이다.

분신자살이 가져올 독특한 심리적 연쇄효과를 우려하는 교수도 있다.

고려대 오정희교수(의학)는 『자살은 어떠한 목적과 정당성이 있다해도 결코 용납될수 없다』면서 『특히 분신자살에는 심리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할뿐아니라 하나의 죽음이 또 하나의 죽음을 부르기 때문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의 제자들에 대한 당부는 사태를 안이하게 지켜보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화여대 김석준교수(행정학)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자제를 촉구한다고 사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면서 『우선 정부가 과감하게 개혁조치를 내놓고 허심탄회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정종욱교수(외교학)는 『오늘의 비극적 사태에 망연자실할뿐』이라면서 『책임의 적지않은 부분이 국민들에게 정쟁상만을 보여준 여와 야에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서울대 김원수교수(경영학)는 『최근의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난국의 근본적 수습에 앞서 아직도 정략적활용 의도를 버리지 않고있는 일부 정치세력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부 교수들의 농성돌입 등 동조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서강대 박홍총장은 『누구에게나 선택과 행동의 자유는 있다』고 전제한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며 단호하게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박총장은 이어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성토만 해서 될일이 아니다』면서 『학생들에게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적할수 있어야 「시대의 선생」 역할을 할수 있다』고 이 시대의 교수상을 제시했다.<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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