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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원래는 「자살」 아닌 「종교의식」/유래와 국내사례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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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원래는 「자살」 아닌 「종교의식」/유래와 국내사례를 보면

입력
1991.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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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관련으론 전태일이 처음/5공이후 잇달아 20여명 희생명지대생 강경대군 구타지사사건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달아 충격을 주고 있다.

분신은 다중앞에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방법의 격렬성으로 여타자살과는 그 파장의 강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더구나 최근 학생들의 분신은 모두 반정부적인 이슈를 내건 극한적인 항의수단이어서 경악을 안겨주고 있으며 이제 생명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분신만은 자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분신은 원래 자살의 방법이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 등의 종교적 의식의 하나.

불교에서는 분신이 중생의 고통을 대변하는 성스러운 의례로 인식되고 있으며 힌두교가 국교인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을 화장하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순사의식이 20세기전까지만 해도 보편화했었다.

저항을 위한 공개자살 형태로 분신이 등장한 것은 60년대,부패한 티우 월남정권이 불교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자 승려들이 이에맞서 가사에 불을 붙여 잇달아 자살했는데 이 끔찍한 모습이 전세계 언론에 보도돼 큰 파문을 던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0년 11월 청계피복노조 근로자 전태일씨(당시 22세)가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조건개선」 등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것이 시국관련 항의수단으로서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후 75년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씨가 「유신철폐」 등을 주장하며 할복했을뿐 분신 등 극단적인 자살시위는 한동안 뜸했으나 80년대 광주사태이후 당시의 억압적인 5공 체제에 대한 항의로 또다시 분신이 잇달았다.

특히 학생들의 분신은 주사파 LN그룹이 대학운동권을 장악한뒤부터 다시 등장했다.

지난 86년 4월 「양키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전방입소거부 시위를 벌이던 서울대생 김세진(당시 21세·미생물학과 4) 이재호군(당시 21세·정치학과 4)이 동반 분신자살했다.

전국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펴낸 자료집에 의하면 5공 7년동안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숨진 62명 가운데 19명이 분신자살로 희생됐다.

김세진 이재호군의 분신은 당시 운동권에서 선뜻 공개적인 이슈로 내걸기 어려웠던 「반미」 운동을 학생운동의 전면에 등장케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이군의 분신 한달후인 86년5월 서울대 이동수군이 또다시 「미 제국주의 타도」 등을 외치며 분신투신했는데 이군의 분신자살은 당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재야 문익환목사의 강연을 듣기위해 모여있던 1만여 학생들이 목격,큰 충격을 주었다.

6공들어 첫 희생은 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대 조성만군이 양심수 석방과 올림픽 공동개최 등을 주장하며 할복투신한 사건. 조군의 투신 3일후 단국대 최덕수군이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했고 한달후인 6월4일에는 숭실대 박래전군이 역시 같은 이슈를 외치며 목숨을 끊었다. 또 89년 4월에는 기성회비동결 요구시위중 자주민주통일을 요구하며 서울교대생 남태현군이 분신했다.

재야측은 80년대이후 시국관련 분신자살 학생이 경원대생 천세용군을 포함해 25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노동계의 분신사건은 전태일씨 분신이후 84년 11월 노조사무장을 해고한데 항의,택시기사 박종만씨가 분신했고 잇달아 경기 안산 금강공업 노조위원장 박성호씨와 노조간부 원태조씨가 분신했다.

분신으로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으면 치명적인데 최근에는 인화성이 강한 시너를 사용하고 있어 일단 옷깃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번져 피부·기도 등에 치명상을 입힌다.

특히 분신은 대개 현장에서 숨지지않고 최장 한달여까지 목숨을 부지한채 서서히 죽어가는 경우가 많아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

그러나 이러한 분신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물론 재야운동권까지 『인간의 존엄성마저 포기하는 항거는 무의미하다』며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학생·근로자들의 유가족으로 구성된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는 『젊은이들은 더이상 죽음으로 현사태에 항거하지 말고 살아서 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전대협 부의장 이철상군(23·서울대 경제 4)도 3일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들의 분신자제를 촉구했다.<윤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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