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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통치의 종식/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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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통치의 종식/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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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는 라일락의 짙은 향기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뒤섞여 찬란한 4월의 빛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잔인하게 퇴색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 한 젊은이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있었고 뒤이어 여대생의 분신소식이 들린다. 4·19이후 이미 30년을 거듭하는 대학가의 진통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돌덩이와 최루탄에 뒤이어 화염병,그리고 이제 쇠파이프까지 등장했다. 4월에 이어 메이데이 그리고 광주 민주화항쟁이 기다리는 5월은 또 한차례 큰 회오리 바람을 준비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누가,또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이 함축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노정권의 정권속성과 연관된다는데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이성을 잃은 몇몇 전경들에 의해 빚어진 우발적 사고나 과잉진압을 명령한 경찰지휘계통의 판단착오의 차원으로 호도될 수 없는 보다 깊숙한 구조적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노정권 후기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공안정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그 뿌리가 멀리 군산통치시대로 이어지는,말하자면 노정권의 태생적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이다.

집권초기 민주화의 격류가 밀려들 때에는 몸을 한껏 움츠리며 얼마간 대세에 편승하여 제한적이나마 민주화를 위한 가시적 노력을 보였던 노정권은,1989년 중반이후 이른바 공안정국의 도래와 더불어 급격히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민주화 대신 체제보위에 앞장섰다. 최근으로 접어들수록 시국사범,노사분규,학원사태 등에 대한 정권의 대응은 과격과 과잉으로 치달았고 이는 민주화의지의 퇴색과 역비례했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의 시점이 이러한 공권력의 과잉투입이 불가피한 때인가. 다시말해 우리의 오늘이 위기관리수단으로서 <힘의 정치>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을 정도로 절박한 시점인가 한번 따져 볼 일이다.

치솟는 물가 등 민생문제와 연관되어 실로 산적한 문제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으나,체제유지 내지 정권보위의 차원에서 볼때,노정권은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국제사회는 탈냉전의 조류속에 놓여있고 북한도 국제적 고립과 경제악화로 최근 곤경에 빠져있다. 그런가하면 대내적으로도 야당은 나뉘어있고 재야의 대부분이 제도정치권에 흡수되었는가 하면 노동운동도 어느정도 안정궤도에 들어서 있다.

무엇보다 꽤나 치열했던 급진학생운동권이 최근 그 기세가 많이 수그러져 우리사회 전체로 볼때 과격한 민중주의의 물결은 이제 한물간 듯한 느낌마저 들고있다. 민중세의 퇴조는 노정권이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적 정서에 이반하는 이들 민중집단들의 거친 구호와 과격한 몸짓에서 비롯된 바 크며,무엇보다 이들은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던져준 충격에서 아직 제대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든 오늘의 시점은 노정권의 입장에서 공권력을 마구 휘두를 시기가 아님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여지껏 집단시위에 대해 이른바 공격형 진압을 일삼던 정권도 바야흐로 방위형으로 그 틀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체제 및 정권저항세력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관용을 베풀며 보다 유연하고 슬기로운 대응으로 체제의 사회통합력을 높여야 할 시점이지,결코 과잉진압으로 체제위기를 자초할 때가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때일수록 정권은 당초 국민으로부터 수임된 민주개혁과 민생문제 해결에 힘을 써서 체제위기의 본원적 극복에 전념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벌거벗은 힘에 과잉의존하는 노정권의 최근 상황대처방식은 국민의 기대와 시대의 흐름 모두에 역류하는 것이다. 데모의공격형 과잉진압은 상대를 적으로,또 상황을 전투로 유추하는 군대식 발상일 뿐더러,진압 자체가 문제의 근원적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올바른 접근이라 보기 어렵다. 집권초기 거친 민중세가 엄습할 때는 한발 크게 물러서서 무위로 일관하던 정권이 이제 상황이 바뀌니 차제에 끝장을 보려는듯 발본색원이 기세로 내닫는 것은,무엇보다 이 정권의 태생적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져 우려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민에 의지하는 민주정치와 힘에 의존하는 공안통치는 반의어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지고보면 노정권은 얼마간 과도기적 성격의 정권이다. 따라서 누구도 이 정권아래서 한국의 민주화가 온전하게 제도화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리더십 아래서 민주,복지,그리고 통일을 겨냥한 큰 흐름이 적어도 물길이라도 찾기를 희구했고,적어도 그 흐름이 역류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렬한,그리고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규범적 바람이 있었다. 따라서 공안통치는 바로 노정권에 대한 이러한 최소한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교정에서 들리는 메이데이의 진군소리를 들으며 제발 우리사회에서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제 그쳤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되씹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순환의 첫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하고 그것은 힘있는 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정권은 집권후기의 권력누수방지와 후계구도마련에 급급해서 권력을 위한 권력을 축적하는데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민주개혁의지의 복원과 정치적 도덕성의 회복을 통하여 난국을 슬기롭게 또 명분있게 돌파해야 할것이다. 이렇듯 노정권이 결연하게 스스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때만이,폭력의 악순환은 그치고 우리사회의 껍데기 아닌 알맹이의 민주화가 바야흐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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