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경대군의 사체부검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유족 및 「범국민대책회의」의 줄다리기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부검에 응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일임을 먼저 밝히지 않을수가 없다. 그길이 진상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보다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릴것은 가리고 따질것은 따져야 하는 진상규명문책개선의 기점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검을 거부하는 유족측의 주장은 『고인을 두번 죽일수 없다』는 점과 『정부 스스로가 타살을 인정한 이상 검안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와같이 민감하고 중요한 사건일수록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분하거나 막연한 재단만으로는 정확한 사인 규명이 힘들다. 이 사건의 경우 가해 행위와 사망간의 인과관계가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소재판과정에서 「증거불충분」 이라는 함정에 부딪치게 된다.
강군의 사망은 정치사건이 돼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형사사건이라는 점을 무시할수가 없다. 일부에선 부검이 공권력의 살인행위임을 감추려는 저의라고 하지만,오히려 부검의 회피가 그러한 구실을 줄지도 모른다. 부검과정을 전국민이 감시하고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양측이 함께 검안키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견해를 밝히는 것은 부검문제를 계기로 해 고 강군의 장례절차가 정치투쟁의 볼모가 될수도 있음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강군처럼 폭력적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던 박종철군은 3일만에,이한렬군은 5일만에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사회는 그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병행시킬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철규군은 사망한지 6개월만에야 겨우 장례가 가능했다. 사인조사 등을 싸고 소모적인 갈등을 계속하다가 사건이 정치적 대결로 변질돼 버려 오히려 고인을 본의 아니게 「곱게 잠들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대책회의는 오는 9일 민자당 창당1주년 규탄집회때까지 장례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9일까지 계획된 집회에 대한 여론의 반응 등을 감안해 장례문제를 연계한다는 의도같다는 것이다. 이 기간중 1일 노동절기념대회 4일 백골단 해체의날 등을 통해 규탄대회를 연이어 가지면서 투쟁의 강도와 수위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도 들린다. 견해에 따라서는 5·18 광주민중항쟁 기간까지 장례식을 미루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강군을 숨지게한 폭력 전경의 만행을 규탄하는데 이의가 없다. 전경의 과잉진압이 가능케 된 분위기가 공안정치에서 비롯됐다는 원인의 지적에도 동감이다.
6공 정부가 후반기 누수방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가 공권력의 하부구조를 적절하게 통제하는데 실패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비극을 계기로보다 확실한 민주화의 길을 확보해야 한다는 국민적·시대적 요구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강군의 유해가 정치투쟁의 볼모가 되는 것만은 반대한다. 우선적으로 이 나라의 오랜 관습에 따라 고인을 국민의 애도속에 안장,유택을 마련해주는 일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할 도리이다. 차디찬 병원의 시체 안치소에 오래 방치해둔채 투쟁만을 외치면 국민감정이 이를 용납하기가 힘들 것이다. 장례절차와 별도로해 이사건을 계기로 따지고 싸우는 일을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