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땅」과 「바람난 드라마」(아침조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땅」과 「바람난 드라마」(아침조망)

입력
1991.04.30 00:00
0 0

드라마는 기록과 달라 허구이다. 사실이 아닌것을 사실인듯 그럴싸 하게 꾸며낸 이야기다. 그렇다고 허무맹랑하지도 않다. 비록 사실은 아니나 사람의 진실을 다루기에 웃음과 울음을 유발하며 사랑과 미움 감동과 비분을 불러 일으킨다.사람과 관련되므로 소재는 무궁하나 제약을 받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떠난 인간이 없는 드라마는 성립될수가 없다. 드라마는 다루는 소재와 대상에 따라 여러갈래로 구분된다. 내면을 다루는 심리드라마가 있고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와 정치·기업드라마도 가능하고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대체로 멜로 성향이 진하다. 비운의 주인공이나 비연의 남녀들이 등장하고 엇갈린 운명을 부각하여 한많은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지나간 1950∼1960년대의 우리영화는 「최루」의 전성기였다. 고무신 관객이라는 유행어가 그때 나왔다. 감상이 풍부한 여성관객을 주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영화는 멜로성을 많이 탈피해 가고 있으나 잔명이 방송드라마로 이어졌다.

TV드라마의 꾸준한 단골 주제는,남녀의 사랑이다. 이러한 극의 무대는 침실이나 밥상 주변을 맴돌거나 호화 유흥장과 별장이 애용된다. 겉으로 사랑이지 등장인물의 관계는 비정상이고 병적으로 전개되어 간다.

삼각애정은 필수조건이나 된듯 정석으로 굳혀졌으며 불륜과 야연이 당연하게 미화되기도 한다. 요즘 드라마에선 부모와 자식이 경쟁을 벌이며 한눈을 파는 장면이 버젓이 나온다. 노골적인 원색의 대사가 시청자의 얼굴을 붉히게 하며 어미와 아들이 서로의 별명을 거리끼지 않고 불러대는 장면도 있다. 세태의 고발인지 묘사인지 왜곡인지 헷갈릴 뿐이다. 불륜은 불륜으로 못을 박아둠이 옳다.

TV드라마의 성향을 일괄하여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흥미와 오락성도 긴요하다. 재미 없으면 낙제점이 찍힌다. 그러나 방송은 일반인의 정서와 성장하는 세대의 교육적 영향을 무시할수 없다.

이런 측면에선 작품에 대한 제약과 극적 전개의 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방송의 공익성과 윤리성 적용은 드라마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방송사가 시청자 불만에 개의치 않음은 불가사의다.

대조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드라마는 뚜렷한 해명조차 없이 도중하차를 당한다. 50회 장기방영을 약속한 「땅」이라는 작품이 그 실례이다. 예정의 잘반도 못가서 발병이 생겨 황급하게 막을 내렸다. 용두사미의 뒤끝이 수상하다. 내압이다,외압이 있었다,아니 방송사측의 독단이다,추측만 엇갈린다. 밖으로 알려진 이유는 정치드리마화 한다는것뿐,진짜 속사정은 짐작에 맡겨졌다. 그러니 극외의 상황을 짐작으로 더듬을수 밖에 없다.

외압이라는 것이 작용하거나 개입했다고 가정해 본다. 현실과 흡사한 묘사가 충격을 주었을지 모른다. 치부나 상처로 생각되는 것은 되도록 덮어두려는 유혹을 받을만 하다. 계층간의 위화나 갈등을 자극하는게 못마땅할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은 현실에 너무 밀착하거나 비약할 필요가 없다. 드라마가 허구임을 생각하면 긁어 부스럼은 피하는게 대범한 자세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며 그렇게 한다고 과거의 진실과 오늘의 현실이 은폐되지도 않는다. 공연한 눈가림은 공연한 의구심을 부풀게 할뿐이다. 「땅」의 방영중단이 요즘 흔히 쓰는 「공안」의 눈이나 편협한 현실감각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임이 양식이고 용기이기도 하다. 소재 선택과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을 떠나 있는것을 그대로 보는 여유와 성숙이 아쉽기만 하다. 과거사에 흔들릴만큼 우리 입지가 허약하지 않다.

방송사측의 중단 결정은 원칙과 균형을 잃었다. 「드라마 끝」이라는 단 한마디로 시청자와의 약속을 단숨에 깨어버린 셈이니 그럴수야 없다. 한편의 드라마만 놓고 방영여부의 시와 비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바람난 드라마」에 대한 비난과 염증은 여성단체의 여론조사에도 드러났다. 가정의 불쾌지수를 높여주는 사랑 타령에 거부감이 역력하다. 흥미위주로 보는것과 즐겁게 보는것을 혼동하면 안된다. 방송사가 정작 손을 대야할데가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다.

가정과 애정의 갈등은 잔뜩 과장해도 오히려 외면하거나 조장하면서 사회성이 부각되면 못마땅하다는 판단은 원칙의 부재이거나 상실임을 지적받아야 한다. 원칙이 흔들리면 균형이 깨어진다. 되고 안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자의가 끼여들면 혼란이 생긴다.

원칙의 확립과 적용은 방송과 드라마에만 국한되지않는 과제이다. 시와 비,정과 부정을 판별하는 원칙이 확고하면 갈등과 비리가 발불일틈이 없다. 원칙을 버리면 혼란이 씨를 뿌린다. 자연과의 관계,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다. 균형감각이 있어야 이치가 바로 보인다.<유영종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