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혁 환경처 장관께.이번 환경처 문책인사가 적잖은 화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발령당일 저녁 자리에서 들은 그 화제는 대강 두갈래인듯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놀라고,어떤 사람은 감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의 놀람은,아침나절까지도 문책인사가 없으리라던 관측과는 달리,장·차관을 한꺼번에 바꾼데 연유합니다. 그 전격성과 후임인사의 의외성이 사람들을 약간 놀라게 한 모양입니다.
다른 한편의,이번 인사에 대한 감탄은,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관료사회에 흔한 「관운」이란 말과 유관합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대표하는 국립대학 두 곳의 총장을 지냈고,이미 보사·문교부 장관은 역임한 새 장관의 경력은 그런 투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누구가 보아도 「장관3관」의 「관운」은 희한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기억하기에,「관운」이 융성하기는 3공때의 박경원 장관이 으뜸아닐까 합니다. 그는 3차례 내무부장관을 포함하여,체신·교통 등 3개부처 장관을 역임 했습니다. 다음은 고건 전 서울시장을 꼽을만 합니다. 그는 농수산·교통·내무의 3부 장관을 역임한뒤 장관급인 서울시장을 지냈습니다. 지금 현역으로는 최각규 부총리가 있습니다. 그는 4공때 이미 농수산·상공장관을 역임한 바가 있으니,역시 「장관3관」인 셈입니다. 장관의 경력은,두곳 국립대학 총장의 경력까지 할칠때,결코 이들 못지 않다고 할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화제들이번 환경처 문책 인사를 보는 한가닥 놀람과 감탄은,어쩔 수 없는 한탄을 곁들인 것이었음을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야 할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인사원칙이 며칠사이 오락가락 하는듯 했던 것과,노재봉 새내각이 발족 4개월만에 탈락자를 낸 사실과,모처럼의 환경처를 발족시킨지 1년여에 3대째 장관을 물갈이 해야하는 환경행정의 혼선 등을 안타깝게 보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새 환경처 장관을 맞은 새로운 환경논의보다는 「대통령의 인사」를 왈가왈부하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싶기도 합니다.
하지만,나는 꼭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경처 새 장관의 인선은 새로운 환경행정의 전개를 위한 인사포석이라 보고 싶은 것입니다. 장관의 경력을 「관운」으로 환원해 버리기보다는,오히려 그 화려한 경력을 통하여 쌓은 경륜과 경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대로,환경처가 발족 1년여만에 3대째 장관을 맞게 되었다는 것은,기구승격에 그친 환경행정의 실속이 별다른것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 한가지 보기가,환경청이래 거듭돼 온 식수난리와,그때 이래로 재탕 삼탕해 온 수질보전 계획일 것입니다. 이름과 규모와 계획목표만 거창한 이 계획들은,낱낱계획내용의 타당성은 접어두더라도,계획실현을 위한 재원과 행정능력 마련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관료행정의 탁상계획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장관 3대가 아니라 장관 10대를 교대한다고 해도 환경이 깨끗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모처럼 6공의 「환경원년」구호가 이처럼 무색해진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그 까닭중 하나가 환경처의 잘못된 위상에 있고,다시 그 까닭은 환경철학 부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자출신 「거물」장관에게 거는 기대도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환경처를 환경부로 다시 승격시킨다든가 하는 따위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기 말하는 환경처의 위상은 정부안에서다시 말하면 행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통치이념,내각안에서의 발언권과 조정능력 등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이런 뜻의 환경처 위상은,환경처의 「격」보다는 장관의 연륜과 경륜의 무게에 달렸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로 정부시책의 관심과 인적·물적자원의 배분이 좀더 환경중시로 기울고,그 영향력이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까지 미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장관 개인으로서 감당하기에 지나친 요망일지 모르나,환경위기속의 다급한 심정은 새 환경장관을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적할 환경처의 위상은 환경처 자체의 성격에 관한 것입니다. 환경청이래의 타성으로 해서,환경처를 행정단속기관으로만 여겨 온 잘못을 고쳐야하는 일이 새 장관의 첫째 임무이어야 할 것이란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환경처가 지방의 온갖 환경감시와 단속을 도맡는 것은 도대체 「처」답지가 못합니다. 환경처 독자의 행정능력만으로 그런 일을 다 할 수 없음은 물론,환경관련 행정이 여러부처에 다기하게 나누어져 있는 사정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역시 중앙관서로서의 환경처는 정책과 통제,기술개발 등을 주관하는 부처로 탈바꿈하고,감시·단속업무는 일선행정기관에 맡겨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마침 지방자치가 본궤도에 오르는 때라,이같은 행정체계 개편이 불가피하기도 합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앙의 환경행정부서는 정책과,환경기술개발을 위한 두뇌집단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미국의 환경보호처(EPA)가 3개의 환경측정망연구소(대기·수질·방사능)를 비롯한 14개의 대규모 연구소를 거느리고 있는것,일본환경청이 10부2과48연구실의 국립공해연구소와 대국민계몽,환경기술·정보의 제공과 지도를 맡은 클린 저팬(청정일본) 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음도 참고할만한줄로 압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국내에서도 이점에 관한 논의가 없지 않아서,이미 작년에 환경과학기술진흥 마스터플랜이 나온바 있고,앞에말한 수질보전대책의 최신판은 환경기술개발원의 설치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계획들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와 그런 구상에 걸맞게 환경처 자체를 뜯어 고칠 수 있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이 방면의 기대 또한 새장관에게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뒤늦어서 안됐습니다만,장관의 취임을 진심으로부터 축하드립니다. 장관특유의 식견과 추진력이 새로운 「환경원년」을 열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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