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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항거/원일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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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항거/원일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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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레이온 퇴직노동자 권경룡씨(44)의 자살은 노동자를 사지에 몰아넣고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회사에 대한 죽음의 항거였다.뒤늦게 권씨의 죽음을 안 미금주민들은 『우리도 직업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한결같이 분개했다.

시전체를 뒤덮은 역겨운 냄새뿐 아니라 세워진지 3년도 안된 육교의 철제난간이 부식되고 공중전화 알루미늄부스와 가정의 전자제품이 쉬 망가지는 현실에서 원진레이온 주변 주민은 죽음의 공포에 싸여 있었다.

원진레이온직업병피해노동자협의회(원노협)의 한 회원은 『2차대전때 나치가 신경독가스로 사용했던 이황화탄소가 가득찬 작업장에서 매일 근무하면서 어떻게 병에 안걸리기를 바라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노동자는 『숨진 권씨뿐 아니라 고통을 호소하며 직업병 검진을 받고도 회사측이 최종판결 운운하며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병이 깊어져 쓰러진 뒤에야 산재요양 휴가를 받는것이 이 회사 실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씨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들과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데도 정작 책임을 져야할 회사측과 관계공무원은 감각이 없었다.

회사측의 권씨의 죽음을 퇴직한지 오래된 한 노동자가 가정문제와 정신병으로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으로 몰고가려는 인상을 깊게 풍겼다.

지난 11일 권씨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도 권씨가 비관자살한 것으로 단순 변사처리를 했다가 뒤늦게 직업병관계 자살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동안 회사측에 직업병 판정을 요구해온 1백30여명의 노동자는 차치하고라도 『미금시보다 두통약이 잘파리는 도시는 없을 것』이라고 한 약국 주인의 말에서 원진의 살인적인 공해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산업재해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플래카드는 걸려있지만 아직도 1천4백여명이 근무하는 원진레이온 회사측과 사회전체가 직업병의 무서움과 근로자의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원시적인 산업현장의 살인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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