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옆서 달아나다 잡혀/머리·등·가슴 맞고 실신/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져/대학생 천여명 세브란스서 철야26일 하오 5시10분께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앞에서 동료학생 4백여명과 함께 시위하던 이 대학 강경대군(20·경제 1) 이 시위진압 전경 5∼6명에게 폭행당해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던중 숨졌다.
강군 등 학생들은 하오3시30분께부터 지난 25일 구속된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4·무역 4) 등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뒤 하요 4시50분께부터 교문밖 진출을 시도,화염병 3백여개와 돌 등을 던지면 저지하는 겅찰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총학생회 사회부장 정한기군(23·토목 4) 등 현장에 있던 학생들에 의하면 교문 앞도로 50여m까지 진출해 시위하던중 인근 골목에서 사복 전경들이 쫓아나와 교내로 달아났으나 뒤에 처진 강군이 교문옆 20여m 지점의 학교담을 넘으려다 전경 5∼6명에게 붙잡혔다.
전경들은 검은색 테이프로 감은 길이 1m 가량의 쇠파이프로 강군의 머리와 가슴·등을 때리고 쓰러진 강군의 옷깃을 잡아끌어 연행하려다 학생 20여명이 각목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놓아두고 달아났다. 학생들은 실신한 강군을 교내 보건소를 거쳐 하오5시30분께 서대문구 북가좌동 성가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숨졌다』는 말을 듣고 하오6시25분께 다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학생 대표와 이우현 명지대 교학과장의 입회하에 시체를 검안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수련의 최옥향씨(27·여)는 『오른쪽 눈썹위 이마가 2∼3㎝ 가량 찢어지고 몸에도 찰과상이 있으나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성가병원 곽동국 외과과장은 『병원도착 당시 강군은 숨진 상태였으며 오른쪽 이마가 5㎝ 가량 함몰돼있었다』고 말했다.
강군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하오7시께 명지대생과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생 등 신촌일대 대학생 1천여명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몰려와 학생들이 이외 외부인들의 출입을 일절 금지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숨진 강군의 누나 선미양(21·명지대 중문 3년)과 아버지 강민조씨(50·건설업) 등은 하오 7∼8시께 연락을 받고 영안실에 도착,통곡했다.
학생들은 이날 밤 11시40분께 아버지 강씨의 동의를 얻어 강군의 시신을 보도진에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61)도 참여했다.
강군은 이마의 타박상과 함께 뒷머리가 터져 피가 엉겨있었고 오른쪽 팔에 피멍,오른쪽 가슴에 20㎝ 길이의 타박상 자국이 나있었다.
아버지 강씨 등은 상처로 미루어 강군이 학교쪽으로 달아나다 잡혀 땅바닥에 고꾸라져 이마를 부딪힌뒤 뒷머리 등을 쇠파이프 등으로 난타당했으며 치명상은 뒷머리의 상처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날 시위진압에 동원된 경찰병력은 서울시경 전경 2기동대 66중대와 4기동대 94중대,의경 249방범순찰대 등 3개 중대 3백20여명으로 강군을 연행하려던 병력은 사복을 한 94중대 인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강군은 지난해 휘문고를 졸업,재수끝에 올해 명지대에 입학했으며 교내 노래서클인 「□」(땅사람) 회원으로 활동해왔는데 이날 시위에선 화염병·돌을 던지지 않는 연락조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파이프 사용 부인
경찰은 『병력이 시위진압때 쇠파이프 등을 소지하지 않아 학생들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투석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사인을 가리기위한 부검에 학생들이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경찰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 수사,정확한 경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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