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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는 청산되고 있는가/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사회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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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는 청산되고 있는가/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사회진단)

입력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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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주악법·인권억압 근본적 개혁을노태우정권은 권위주의 청산을 내걸고 출범했다. 그 권위주의는 과연 청산되고 있는가. 임기의 3분의 2가 지난 오늘,이 질문을 제기해 본다.

5공 시절과 비교해서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인상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는 분명히 5공과 달랐다. 지난 3월에는 지자제 기초의회 선거가 있었고 6월에는 광역의회 선거도 치러질 예정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경직된 반공노선과 비교해볼때 소련,중국,동구권과의 관계개선도 탄력적이거니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북한을 제치고 제주도에 먼저 들러 한소 정상회담을 가진데서도 변화의 속도를 실감할수 있다.

사회적인 변화도 부정할 수 없다. 신문과 방송은 오늘날 과거와 같은 언론통제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운듯이 보인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대학,직능단체,노사관계 등에서도 5공과는 분명히 다른 개선을 확인할수 있다.

문제는 과거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외형적인 변화를 가지고 권위주의 청산을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가에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정부·여당은 이번 154회 임시국회에서 악명높은 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을 부분손질한 이른바 「개혁입법」을 단독으로라도 통과시킴으로써 6·29공약의 이행을 선전할 모양인데,정직하게 말해서 집권층은 겨우 이런 방식으로 밖에 6·29의 의미를 해석할수 없는 것인지,또 이렇게해서 과연 권위주의가 진정 청산된다고 보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의 구조적 특징은 첫째로 통상적인 정부조직 위에 우뚝선 초법적인 권력기구,이를 뒤받쳐주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의 반민주성에 있다. 따라서 이에관해 근본적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된다. 근래의 「공안정치」 파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 구조개혁이 없이는 정치의 복원도,참된 다원사회의 건설도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의 전면개혁이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아무리 고르바초프가 한국을 방문하고 북한과의 경제교역,문화·학술·체육교류,정치회담 등을 정부가 적극 추진한다 하더라도 구시대의 악법을 그대로 지키거나 그 골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부분 손질만을 가한다면 이로인한 국민의식의 혼란도 심각하겠거니와 노정권의 권위주의 청산이 결국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불가피하게 확산시킬 것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할때 국가보안법은 이제 폐지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필요하다면 형법전으로 안보문제를 수용하되 인권유린의 소지가 크고 정치범의 양산과 과형벌화를 가져오는 낡은 특별법은 이제 과감히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의 두번째 특강은 수사기구들안에 인권억압의 관행이 깊숙히 체질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도 개혁은 답보상태를 면치못하고 있다. 안기부의 수사관행은 아직도 헌법정신을 비웃고 있으며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알리는 사건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최근 「전노협」의 자료가 보여주듯이 노동쟁의에 관련된 노동자의 인신구속이 6공들어 현저히 늘고 있어 법적용의 공평성이 크게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인권상황은 객관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권위주의는 중앙정부의 비대화와 재벌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오고 이에따라 정경유착을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이점에서 우리에게 과연 어떤 개혁이 있었던가. 말의 성찬을 떠나 실제 개혁은 미미하기 짝이없다. 금융실명제는 포기되었고 경제력 집중은 지속되고 있으며 「수서사건」을 통해 드러난 정경유착은 곧바로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거의 독식해온 정치자금의 실상은 여전히 흑막속에 가려있다.

그 외에도 권위주의의 구조가 큰 변화없이 온존하고 있음을 주장할 근거는 많지만 여기서는 신권위주의의 특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핵심은 정부의 정보독점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즉 제도의 합법성과 정보통제 및 정보의 선택적 이용으로 여론을 관리조정하는 기법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기초의회선거는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엄격히 막음으로써 탈정치화를 가져온 신권의주의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언론은 아직 이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안된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집권층의 개혁의지 빈곤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권위주의를 극복할 진정한 대안을 알차게 준비하는데 있다. 권위주의와 싸우면서 또 하나의 권위주의를 탄생시키는 악순환은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시대의 변화의미를 깊게 해독하는 철학이 필요하고 개혁에 필요한 사회적 에너지를 입체화시키는 리더십과 조직능력이 요구된다. 이 조건위에서 참된 문민정치는 실현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으로 보자면 신권위주의의 도전에 맞서 정보권의 중요성에 빨리 눈을 떠야한다. 정보공개와 자유로운 정보유통에 근거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학습과 계몽이 모든 개혁의 기초가 되고 권위주의 청산의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반관료적,반권위주의적,반엘리트주의적,참여지향적 시민운동들의 네트워크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활력을 높이려는 모든 시도들을 예의주시하고 적극 지원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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