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손드는데…” 선회 분위기/경제 논리 넘은 파장 심각 우려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정부정책이 전면 수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때부터 『쌀을 식량안보 차원에서 무슨 일이 있어로 개방하지 않겠다』고 천명해왔으나 최근들어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잇달아 『쌀도 개방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발언,심각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제네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UR) 실무협상의 우리측 수석 대표인 박수길 주제네바대사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제네바 현지의 분위기로 미뤄볼때 국제적 개방압력을 도저히 버틸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쌀 시장의 3∼5%를 연차적으로 개방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대사의 발언과는 별도로 미국을 방문중인 이봉서 상공부장관도 같은날 현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수입제한 정책을 자유화할 것』이라고 발언,쌀시장 개방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당사자들은 『사견이 잘못전달 되었다』고 해명하고 나섰으며 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에서도 『쌀 등 기본식량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절대 개방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는 종래의 입장을 되풀이,이들 발언이 가져올 파문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공식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언은 『UR협상과 쌀 시장 개방문제에 임하는 정부의 전략이 1백80도 선회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특히 박대사의 발언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본의 쌀시장 개방을 전제로 했을 뿐 아니라 발언당사자가 UR협상의 우리측 대표라는 점에서 본인이 아무리 사견임을 주장해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대사는 그동안 미국의 개방압력에 완강히 버텨온 일본도 쌀시장을 일부분 개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었다.
즉 우리보다 협상여건이 유리한 일본이 시장을 개방하면 우리로서도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대사나 이장관의 발언이 UR에 임하는 정부 입장의 변화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은 그동안의 UR협상 과정에서 정부부처간의 견해차가 작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농림수산부가 쌀은 기초 식량으로 식량안보 차원에서 절대 개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부처에서는 『모든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인데 우리만 고집을 부린다고 관철이 되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림수산부가 쌀을 비교역적 품목(NTC) 임을 내세워 개방불가론을 펴고 있는데 대해 이들은 『모든 국가가 각기 다른 품목을 NTC로 내세워 개방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UR협상은 절대 타결될 수 없으므로 NTC라는 용어 자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펴고 있다.
박대사나 이장관의 발언은 결국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주장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이득을 취하지 것이 낫지 않느냐』는 정부 일부부처의 의견이 집약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쌀시장을 개방하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한것이 아니다.
쌀의 국내가와 국제가격의 차이가 큰 만큼 소비자들은 싼값에 쌀을 살수가 있을뿐 아니라 쌀을 개방하는 대신 다른 공산품의 수출이 늘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명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쌀시장 개방으로 농업이 파탄상태에 이르고 그 결과로 닥쳐올 사회 정치적 파장은 당장의 경제적 이득에 비할수 없을 만큼 심각해진다는 주장도 결코 무시할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쌀이 농업소득의 52%,농가소득의 31%를 차지하고,대부분의 농민이 쌀에 생계를 매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쌀시장 개방문제는 경제 논리로만 풀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주장은 결국 쌀시장 개방문제 만큼은 여느 농산물 수입개방과는 달리 더욱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정부부처간 견해차이 조정도 없이 아무나 『쌀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발언을 내뱉는 일은 그 의도야 어떻든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정숭호기자>정숭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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