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는 재야인사 백기완씨가 「대꼬챙이」로 알려진 의사 소설가 수필가 윤호영씨의 영전에 슬픔에 잠겨 분향을 하고 있었다.22일 하오9시15분 고혈압과 심근경색 때문에 65세로 타계한 윤씨와 백씨의 인연은 기묘하고 특수했다. 윤씨는 서울구치소 의무과장이던 80년초 빈사상태의 백씨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당시 모진 고문으로 쓰러져 있는 백씨를 보고 윤씨는 구치소 간부들에게 요양을 받게해줄 것을 끈질기게 건의,한양대병원에 입원하도록 주선했다. 백씨는 『살벌했던 분위기에서도 윤씨는 나의 신분을 가리지않고 구해주었다』면서 『그후 그의 순수성과 인간사랑에 반하게 됐다』고 말했다.
빈소를 지키던 문학평론가 신동한씨,시인 안도섭씨 등도 『불의와는 타협할줄 모르지만 어렵고 힘든 이웃이나 문단동료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다』고 애도했다.
윤씨는 선친의 뜻을 따라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의사의 길을 걸었지만 국민학교 중학 동기동창인 고 박인환시인과 어울리며 문학에 심취,고 정한모시인 등과 「백맥」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해 중·단편소설을 냈고 85년에는 소설집 「초맹」으로 제5회 한국펜문학상을 받았다. 「인간들」 「인간으로 돌아가라」 등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의 저작은 휴머니즘으로 일관됐었다.
윤씨는 경찰병원 건강관리 과장일때 의사들의 부도덕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의료의 사회윤리」라는 글을 한국일보에 기고했다가 서대문구치소에 보름간 구금되고 공무원 자격을 박탈당하는 필화도 겪었다. 행종소송끝에 2년5개월만에 승소,공무원자격을 회복한뒤 1년만에 자진사직한 것은 윤씨의 매운면을 잘 보여준 일로 꼽힌다.
로맨티스트를 자처해온 윤씨는 4년전 갑자기 쓰러진뒤 회복하지 못했다. 유족들과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에세이 80년대」 동인들은 곧 유고를 모아 발간할 예정이다.<송용회기자>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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