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적인 제주도 방문을 마치고 20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한국과 소련 두나라 지도자의 제주도회담은 대체로 예상과 과히 어긋나지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만남에서 두나라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긴장완화에 인식을 같이 했을뿐 아니라,소련의 개혁·개방이 성공해야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재확인했다. 이런 입장의 재확인은 말하자면 이제는 의례적인 절차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여객기 격추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소련이 한국의 유엔가입을 사실상 지지하고,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한다면 소련의 핵연료공급 및 기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다짐도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특히 북한의 핵사찰문제는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제주도회담에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호·협력조약을 제의해서 노태우대통령이 동의했고,두나라 외무장관의 교환방문에도 합의했다. 서울모스크바관계가 이제는 어정쩡한 탐색단계를 지나 보다 안정되고 실질적인 협력관계로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하겠다.
구체적인 합의로서는 시베리아의 자원개발,그중에서도 사할린의 천연가스 개발합의가 특히 주목된다. 아마도 미국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되는 「제3국」의 자본참여를 전제로 두나라가 사할린의 가스개발에 합의한 것이다.
제3국의 자본참여 문제가 있는 만큼 사할린의 가스 공동개발의 스케줄은 일방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된다면,막연한 원칙론에 그쳤던 한·소 두나라의 개발협력이 실현의 첫발을 내디딘다는 점에서 두나라 관계에 커다란 전진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에서의 만남은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를 봤느냐하는 것보다는 그 상징적 의미가 압도적으로 크다.
구체적 합의사항들이 이미 충분히 예상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지만,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은 당장의 이해관계보다 훨씬 중요한 장기적 충격을 지닌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한·소 두나라가 외무장관의 교환방문과 우호·협력조약을 협의키로 한 사실은 이번 제주도회담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될 것이다.
서울=모스크바 관계가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진행될 것인가는 사실상 우리쪽보다는 소련쪽의 사태발전에 크게 영향받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회담의 성과는 회담 그 자체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평양방문 계획을 밝힌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행여 모스크바 외교에의 「과당경쟁」을 경계해야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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