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던 제주 한소 정상회담이 끝났다. 회담은 고르바초프대통령 도착직전까지의 파란에 비교할 때 대체로 무난하게 진행됐으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완벽한 회담장 준비와 철통같은 경호·경비,거기에 쾌청한 날씨까지 겹쳐 회담분위기는 화사한 유채꽃만큼이나 밝았다. 특히 1박2일이라는 어엿한 체한일정이 이번 회담의 상징적 의미를 배가시킨 사실을 회담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바탕 잔치를 끝내고 가다듬어보는 마음 한구석에는 무언가 헛헛함이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소란뒤 정적이 가져다주는 공허함은 아니다. 오히려 회담의 상징성만큼 실질측면에서의 기대치가 만족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 실체인듯하다.
이번 회담에 그토록 집착하게 만든 우리의 분단상황이 스스로에 대해 애처로움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한 소련의 명시적 입장표명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끝내 이 기대를 채워주지 않았다.
회담내용을 발표한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은 『명확한 입장표명이었으나 발표치 않기로 합의했다』며 『배석자로서 만족한다』고만 말했다. 밝힐수는 없지만 우리의 가입을 지지하는 언급이 있었다는 시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이 수준은 아니었다. 회담전 정부당국자들은 『소련이 우리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이미 알고있다』면서 『소련이 한발더 나아가 명시적 입장을 표시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을 앞당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느방식이 북한을 「빗장」밖으로 끌어내는데 기여할지는 별도차원의 이론이 있을수 있겠지만 결국 이번 회담에서 소련은 또다시 북한을 의식한 완보를 택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공항도착을 지켜본 한 당국자는 10분전 먼저 도착한 수행원들의 신속하고도 치밀한 경호태세를 예로 들며 『소련은 역시 대국』이라고 감탄했다. 수시로 일정을 바꾸는 등 어설픈듯한 소련의 외교행태 뒤에는 그같은 치밀함이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회담장소를 제주로 택한것이나 도착당일인 19일 전격적으로 1박을 결정한 것 등은 모두 북한과 일본을 고려한 「묘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징성이나 정치적 부수효과에 만족하기에는 국제정치는 여전히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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