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메모지·화장지 증거명백/충분한 대질 안시키는등 「싸고돌기」/지휘관 문첵우려 기동대 비협조도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일어난 전경차림 청년 2명의 행인 성폭행사건이 발생 9일이 지나도록 용의자조차 가려내지 못하고 있어 경찰이 과연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지되고 있다.
이 사건은 당초 피해자 이모양(25)이 범인들이 사복전(의) 경차림이었다고 뚜렷하게 진술한데다 기지로 범인들중 한명의 주머니에서 빼닌 한자공부 메모지,범인들이 몸을 닦은 화장지 등 명백한 물적증거까지 있어 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문제의 한자메모지는 지난 2월 모선교단이 서울 시내 전·의경부대에 위문품으로 기증한 한문교범을 교재로 삼아 작성된 것임이 밝혀져 범인들이 전·의경이라는 확증이 더해졌다.
또 사건당일 이양이 처음 불심검문을 당했던 곳에서 근무했던 서울시경 1기동대 24중대 의경 1백30여명과의 대질에서 이양이 4명을 용의자로 지목까지했으나 이들이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바람에 부대로 복귀시켰다.
경찰은 지난 12일 한자메모 글씨체와의 대조를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던 24중대원들의 한문소양교육 노트의 감정결과에 기대를 걸었으나 18일 같은 교범의 글씨체를 모방한 것이어서 감정자료로서의 가치가 없고 제출직전 한 사람이 여러권을 한꺼번에 작성하는 등 조작된 흔적마저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경찰은 화장지도 말라버려 정액을 통한 혈액감정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를 맡고있는 종로 경찰서 관계자들은 『젼·의경들이 경찰의 수사 생리를 어느정도 알고 있어 조사에 어려움이 많은데다 감정결과까지 신통치 않아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방한 글씨체는 필적 감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수사 경찰이 소홀히 한점과 초동수사대 충분한 대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은 납득하기 어렵다.
성폭행을 당해 극도로 불안한 심리상태인 피해자가 문틈으로 1개분대씩 서있는 비슷한 머리와 복장의 전·의경들을 한차례 훑어보는 것으로 무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 뒤 계속 『피해자의 품행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를 흘렸고 18일에는 용의자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초동수사가 일단락됐다』는 이유로 전담반을 2개반에서 1개반으로 줄여 축소·지연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24중대원중 한문노트를 대필해 제출한 의경에 대한 추적수사도 소홀히 하고 있다.
한 수사관계자는 『범인이 밝혀지면 소속부대 지휘관에게 문책이 뒤따를 것이 분명해 기동대쪽이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꺼려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18일에야 사건현장 주변에서 근무했던 전·의경 3백여명이 부대에 들어올때 자필로 작성한 신상명세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필적감정을 의뢰하고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려 이들 전체인원중 용의자를 찾고 있다. 이 사건해결의 열쇠는 전·의경 범죄를 척결하려는 경찰의 의지가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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