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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회장은 「황제」인가/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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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회장은 「황제」인가/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입력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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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적관리 탈피 경영민주화해야서양사를 돌이켜볼때 절대군주로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사람으로는 루이14세를 들수 있다. 자랑스럽고 사치스러우며 또한 지배적이었던 그는 자신이 신에 의하여 국가통치를 위임받았다고 생각하였으며 국가의 복리가 곧 자신의 행위와 일치한다고 간주하였다. 유명한 『나는 국가이다』라는 그의 말은 권력에 대한 그의 이런 생각을 잘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므로 루이14세는 통치권행사에 있어서도 모든 국가의 행정을 독단적으로 결정·감독함으로써 휘하의 재상들을 행정을 꾸려나가는 장관이라기보다는 단지 왕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말단 공무원에 지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에대한 사후 역사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그가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것보다는 단지 훗날의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기업,특히 재벌그룹 소유자들을 한번 둘러보자. 그들이 기업을 세우고 여러가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단지 자기기업만을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고용을 창출하였으며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을 추구하여 국민소득을 증대시키고 우리나라가 지난날의 절대빈곤상태로부터 벗어나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산업의 황무지에서 출발하여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날의 재벌기업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것을 시작한 창업자로서는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기업을 자신과 동일시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재벌이라 불릴만큼 기업이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업의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싶어하고 행여라도 계열기업 사장들이 자신의 명령이나 지시에 어긋나는 독자적 경영을 하고자 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게된 것이다. 즉 재벌휘하의 사장들은 최고경영자라기 보다는 단지 회장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충실한 행정요원이면 된다고 생각하게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재벌기업들 사이에서는 소위 「회장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즉 사람이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면 감기에 걸렸다고 하듯이,다음과 같은 몇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그 기업은 「회장병」에 걸렸다고 한다.

첫째로 재벌의 회장은 무슨 일에서든지 절대로 잘못할 수가 없고 따라서 어떤 잘못도 회장의 오류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회장 주위가 아첨하는 사람으로 둘러싸여 항상 회장이 옳다고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셋째로 재벌기업내의 모든 결정은 회장 자신이 직접 내리기를 원하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알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넷째로 언제부터인지 회장 스스로가 기업인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세가로 처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기업내 회의에서도 실질적 내용보다는 회장이 들어올 때 다른 사람들이 기립하는가 등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로 유능한 전문경영자를 양성하기보다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경영자를 새로운 사람으로 가차없이 교체해버리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재벌의 회장이 기업내에서 마치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황제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더욱이 이런 현상이 창업 1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상속한 2세 회장에게까지 연장·심화됨으로써 심각한 기업내의 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같이 몇몇 재벌그룹에 경제력이 집중되어 국민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들 기업에 의해 창출되는 상황에서는 이들 재벌의 경영방식은 국가자원의 합리적 배분과 관리라는 차원에서 사회일반의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사회전체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특정인이 수많은 종업원과 엄청난 자산을 보유한 기업군을 마치 황제와도 같은 관리방식에 의해 경영한다는 것은 사회적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물론 대기업이나 재벌의 창업자로서 국가경제와 기업의 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유능한 최고경영자를 양성하여 기업을 분권화하고 책임경영을 실시하는 회장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나 심지어는 재벌기업내부의 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도 재벌회장의 황제적 행동에 대해 크고 작은 불만의 소리들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경제의 최고기업인으로서 귀담아 들어야하겠다.

지난 몇년 사이 우리주위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돌이켜보면 마치 누군가가 오늘의 입장에서 과거와 미래를 단절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즉 요사이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결코 과거의 연장이 될수없다는 교훈을 얻게되는 것이다. 정말로 미래가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면,우리기업 경영에서도 재벌그룹 회장의 기능이나 역할이 새로운 여건의 전개에 따라 과거와는 다르게 변하여야 할것이다. 만약 「회장병」을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한다면 어느날엔가 경영의 민주화라는 큰 변화가 타의에 의해 일어나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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