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도 짝이 있다」 이 말은 발에 신는 고무신도 짝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짝이 없어 걱정하랴는 뜻을 담고 있다. 못생긴 딸을 둔 부모들이 주로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이 말을 많이 입에 올렸다.이 말도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설자리를 잃었다. 가족계획과 인구의 도시집중화가 이를 부채질,이 말의 참뜻을 앗아가 버렸다. 농촌의 총각이 장가못간 것을 비관해 자살한 뉴스가 종종 신물지면을 장식한다. 그나마 이젠 이 뉴스도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도시처녀와 농촌총각의 맞선 행사가 하나의 사회풍속도처럼 돼버린 오늘이다.
이같은 현상은 선진화과정을 거쳐간 많은 나라가 경험했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농촌총각의 자살도 있고 도시처녀와 농촌총각의 만남의 자리도 있었다. 그래도 농촌의 신부난은 여전하다.
이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신부수입이다. 일본인다운 발상이다. 노동력 수입이나 해외에 이민간 사람들이 본국에서 신랑·신부를 맞이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21세기의 문턱에서 동족이 아닌 외국인 처녀들을 드러내놓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마 일본외에 없을 것이다. 노동력 수입이라면 문을 그처럼 꽉 닫고 있는 그들이 신부를 외국에서 맞이한 것이다.
일본의 한 TV에서 「수입신부」 특집을 시청한 일이 있다. 재일동포 북송항구로 유명한 니가타(신사)현의 한 농촌마을에 집단으로 시집온 10명 가까운 신부중 일부가 화면에 등장했다. 동네총각들이 신부난으로 장가를 가지 못하자 마을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필리핀·태국 등 동남아에서 이들을 데려온 것이다. 마을대표가 현지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수입신부들은 서투른 일본말로 농사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니가타현의 마을에 이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고도 오가사와라(소립원)의 한 어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섬은 동경에서 남쪽으로 1천㎞나 떨어진 절해고도이다. 우리에게는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이 한때 일본정부에 의해 유배된 섬으로 그 이름이 어렴풋이 전해올 뿐이다.
이 절해고도에 한국인 수입신부가 살고 있었다. 어부의 부인이었다. 그는 떠듬떠듬한 일본말로 처음엔 사진이 오가고 건강진단서 등이 뒤따른 뒤 시집을 오게됐다고 설명했다. 행복하다는 말을 잊지않았지만 그의 얼굴엔 짙은 향수를 감출수는 없었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90년 인구주택조사 잠정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신부난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난해의 경우 결혼적령기의 남녀비율이 104.7대 100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4.7%인 9만8천명이나 많았다. 2000년대에는 남녀성비가 더욱 벌어져 남자가 여자보다 19.4%나 많으리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금 국민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6∼10세)들이 결혼적령기에 이르는 2010년대에는 남자 1백94만6천명에 대해 여자는 1백51만3천명에 불과해 남자가 여자보다 무려 28.6%인 43만3천명이 많아진다. 4명중 1명을 장가를 못간다는 계산이다.
이대로 간다면 남자의 지참금시대가 오고 신부라도 수입해야할 판이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위해선 올바른 인구정책을 마련하고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꾸준한 게몽이 필요할뿐이다. 이를 게을리하면 옛날에 딸가진 부모들은 「고무신도 짝이 있다」고 자위했지만 오늘과 내일의 아들가진 부모들은 그대신 「고무신도 짝이 없을수 있다」고 한탄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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