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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붕 「천안문」 악명 벗으려 고심/곧 방북 예정… 어떤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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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붕 「천안문」 악명 벗으려 고심/곧 방북 예정… 어떤 인물인가

입력
199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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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 양아들… 가문 연줄로 부상/관영매체 통해 자상한 면모 선전금명간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진 이붕 중국 총리는 걍경보수의 이미지를 떨쳐버리려 애쓰고 있다.

지난달 2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연례국정보고를 한 이붕은 2년전 북경대학살의 망령을 불식하는데는 실패했다.

중국의 새세대 지도층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인물중 하나인 올 62세의 이는 아직도 중요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일부 원로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지만 2년전 6월 천안문사태의 강압적 진압에 대한 국민 분노의 화살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 얼마전에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에 이를 암묵적으로 공격하는 시가 실리기도 했다. 문제의 시는 대각선으로 읽으면 『이붕퇴진하라,인민은 분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그의 강경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서인지 관영언론매체들은 올해초 이붕을 보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조명,자상한 가장으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 한 기사는 그의 아내의 입을 빌려 2남1녀의 아버지인 「그 어른」이 사려깊고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고 소개했다.

외국 지도자들과 만날때 취임 당시보다 자신감있게 행동하며 요즘은 「매우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한 고위정치 분석가는 말한다.

그는 신중한 기획가로 88년 9월 시작된 긴축경제게획을 지휘했고 이 계획은 과열경제를 냉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주은래 총리의 양아들인 이붕은 가문의 연줄에 힙입어 지도층으로 부상했다. 고위 공산당 간부였던 그의 생부는 1930년대 국민당에 의해 처형됐다.

이붕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성과 복잡한 중국 관려체제의 조심스런 운영 덕분에 그에 대한 비판을 극복해 왔다고 외교관들은 지적한다.

그는 모험을 하려하지 않으며 자제를 할 줄안다고 한 아시아 외교관은 평한다.

지난 1966년 고모택동 주석이 문화혁명을 일으켰을때 소련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인 이붕은 북경 전력관리 국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임무는 이문혁 혼란기에 북경과 천진에 전력공급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안경을 쓰고 배가나온 이붕은 지난 87년 11월 공산당 13전대회때 5인 정치국상무 위원회에 들어갔다. 같은달 그는 당 총서기가된 조자양의 뒤를 이어 총리 서리가 됐다.

이붕의 부상은 당시 상충하는 파병간의 타협책으로 해석됐었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이는 곧 개헉파인 조자양과 의견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조는 89년6월 실각했다. 이는 조의 개혁정책이 인플레를 부채질하고 사회적 불안정을 조장한다고 생각했다.【북경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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