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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민족의 비극(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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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민족의 비극(사설)

입력
199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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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에게는 친구란 없다』는 것이 쿠르드족의 속담이다. 그만큼 비극적인 역사를 지닌 비극적인 민족이 쿠르드족이다. 아랍족도 아니고,독자적인 언어를 가진 쿠르드족은 약 1천5백만명이 이라크ㆍ이란ㆍ터키에 주로 몰려있고 시리아와 소련땅 중앙아시아에까지 분포돼 있다. 1천9백만인구의 이라크에는 약15%선인 2백80만의 쿠르드족이 북부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후세인이 무모한 쿠웨이트전쟁에 참패한뒤 쿠르드족은 『후세인을 몰아 내라』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부추김을 믿고 총을 들었었다. 그러나 막상 후세인 타도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외면해 버리고,쿠르드족 전사들은 압도적인 후세인의 군사력앞에 죽음의 항전을 해야했다.

쿠르드족이 서방강대국의 「배신」의 제물이 된것은 20세기 들어 이번이 세번째라고 할 수 있다. 1차대전이후 오토만제국 해체과정에서 영국은 쿠르드족 독립을 약속했지만, 파이잘이라는 뜨내기 왕조를 세우고 약속을 저버렸다. 뿐만아니라 영국공군은 쿠르드족 저항군에게 독가스를 투하하기까지 했다.

1932년 이라크가 명목상 독립한뒤 이라크공군은 계속 북부산악지대의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그러나 쿠르드족의 영웅 무스타파ㆍ바르자니의 영도하에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립영역을 확보했고, 이라크정부도 자치권 허용을 약속했었다.

1972년 이라크견제를 노린 이란국왕 팔레비는 미국을 설득해서 이라크의 쿠르드족에게 1천6백만달러의 군사원조를 주기로했다. 그리고 3년뒤 알제회담에서 이란은 이라크의 영토권주장과 쿠르드족 군사원조를 맞바꿨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키신저는 쿠르드족 대표와의 접촉도 거절했다.

미국은 또다시 「이라크 내전불개입」의 명분밑에 쿠르드족 어린이와 노인과 여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의 탈출극을 강건너 불처럼 봐왔다. 세계의 동정이 이들에게 쏠리자 비로소 독일은 서유럽동맹(WEU)에게 쿠르드족 자치허용과 구호를 제의했고,유럽공동체(EC)는 약 1억8천만달러의 긴급원조를 결정했다. 또 미국도 수송기를 띄워 죽어가는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공중투하 하고있다.

서방측은 과거 유태인에 대한 약속을 실현한 것처럼,쿠르드족에게도 비극의 종말을 약속해야 한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최상의 기회다. 우리는 과거 강대국 이기주의의 외면속에 외롭게 일본침략자들과 싸웠던 기억을 갖고있다.

쿠르드족에게 전세계가 나서서 긴급구호의 손을 뻗치고 한걸음 나아가 이들에 안식의 땅을 보장해 줄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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