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겉은 자율 속은 타율/유영종(아침조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겉은 자율 속은 타율/유영종(아침조망)

입력
1991.04.09 00:00
0 0

서울근교의 야산에 올랐다. 중턱에 이르러 새로 세운듯한 3개의 팻말과 맞닥쳤다. 하얗게 칠한 널빤지에 자극적인 빨간 글씨로 명령조의 구호가 쓰여져 있었다. 산불조심 취사금지 쓰레기 갖고가기,대개 이런 내용이다.아늑한 산책길이 갑자기 딱딱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미관의 손상도 손상이지만 산에서까지 이런 지시를 받아야 하나,은근히 야속하고 서글펐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돌려보니 그럴만도 하다. 엄격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산은 계속 훼손되고 더렵혀 질테니 어쩔수 없다.

자율이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자율훈련이 필요하다. 자율은 화음과 같아 하나의 소리라도 틀리면 전체가 망치게 된다. 불협화음은 자기 억제를 모르거나 아니면 자기 역할을 깜박 잊는데서 생겨난다. 조율을 잘하면 화음에 금이 안간다.

자율은 인격의 독립이며 윤리의 기본이기도 하다. 독립과 자유를 원한다면 자기 조율에 충실함이 마땅한 일이다. 각자가 제몫을 맡아 이행해야 자율의 진가가 빛난다. 보석은 닦아야 빛을 내는것과 비슷하다.

반대로 타율은 밖에서 나의 의사와 관계 없이 주어지는 것임은 쉬운 이치다. 불협화가 자꾸 일어나면 결국 강제를 자초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공공의 질서 유지는 바랄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율의 타성에 너무깊이 빠져 있는게 아닌가 묻게된다. 자발적으로 하자면 발을 빼다가도 단속과 벌칙이 벼락처럼 내려치면 고분고분해 하는 경향이 없지않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는 후회가 한발 늦게 터져 나온다. 자기 주장은 성급하고 의무엔 더디다면 공중생활은 낙제점을 받게 마련이다.

중고교생들의 교복은 큰 환영을 받으며 폐지 되었다가 이젠 점차 착용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자율의 후퇴이자 실패의 단적인 실례라고 한들 변명의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아직은 주는 떡을 제대로 받아 먹지 못할만큼 자율은 미숙하다는 부끄러움이 솟아 오른다.

도시인 또는 생활인의 건강한 취미로 성행하는 등산은 어른스럽지 못한 산행으로 발목이 찍혔다. 등산인지 먹기 위한 소풍인지 분간을 못하게 되었다. 도시의 악취를 산에다 팽개쳤다. 마침내 산이 썩어 신음하게 되니 취사금지령을 내렸다. 기분좋게 오르고 나서 오물장 취급을 했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스스로 못지킨 자연을 강제가 보호하고 나선 꼴이 되었다.

결과가 어떠했는가. 병구의 산은 회복기미를 보이고 생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산행의 멋과 맛의 하나를 잃었다면서 발을 구를 일이 아니라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고 수치를 느끼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을만 하다.

교통고를 가중케한 반질서 행위는 또 다른 자승자박의 경우로 꼽힌다. 음주운전 벨트착용 주차위반 등은 안전을 위해서 솔선하여 삼가거나 시행해야 할 항목에 속한다. 공안기관이 서슬이 시퍼렇게 끼어들 여지를 없앴다면 거리질서는 벌써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단순한 으름장으론 안통하고 실제 뜨거운 맛을 보아야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떳떳지가 못하다. 음주운전이나 벨트를 착용안하는 행위는 자살기도와 다름없음을 뻔히 인지하고도 자발적으로 습관화 시키지 못함은 공중의식의 부족탓임을 누구나 익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실천에 옮기지 못함이 관례로 남았다.

앞으로 경범죄 처벌이 한층 강화된다.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다가 망신을 겸해 손재를 많이 입는다.

주정뱅이도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벌칙금이 올라 거리분위기가 좀 경색될지 모르겠지만 청결과 온화함이 자리잡는다면 나름대로 의미있고 반가운 일이다.

행정기관이 이렇게 시민생활에 자꾸 끼어드는 것은 원칙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훈계를 듣기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하라 말라」식의 명령형은 누구나 싫어 한다. 이쯤의 불평을 하면서 꼼짝없이 명령을 따라야하는게 솔직한 우리네 현실이다.

주제 넘는 의견이나,한마디로 시민의식이 모자란다. 자율을 갈망하는 가운데 실행은 빈약하다. 시민의식은 연대감으로 엮어지고 이어져 가는 것이다. 경범죄에 해당하는 과실쯤은 시민의식으로 소멸시킬 만할 일들이다. 그것은 본디 법과 규율이 관장할 사항이 아니다.

공공의 규범으로 경범의 범법성을 흡수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빠른 시일안에 타율의 규제는 사문화된다고 확신한다. 경범죄가 존속함은 사회의 불협화음이 있음을 뜻한다.

자율의 정신은 시민의식의 바탕이다. 타율을 극복하려면 그것을 끌어 들이지 않는다는 자각과 결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자율의 가치를 터득할 때 선진시민의 자각이 피어난다. 겉으로 자율,실제로 타율의 관행은 후진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