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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구서 “와신상담”/5공 실세 허삼수씨(월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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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구서 “와신상담”/5공 실세 허삼수씨(월요석)

입력
1991.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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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사건 계기 개혁의지 퇴색”『5공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수 있고 객관적인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기엔 아직 이릅니다. 하지만 공이든 과든 그것은 몇몇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있는 우리 모두가 떠안아야할 일이라고 봅니다』

12·12와 5·17을 외치며 배태된 5공 출범당시 정권의 이념적·실천적 지주역을 담당했던 소위 실세그룹의 대명사처럼 통했던 이른바 「3허체제」의 한사람인 허삼수씨. 그러나 82년말 이·장사건의 처리문제를 둘러싼 권력핵심부의 갈등끝에 2년간 재임했던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을 사직하고 도미,5공의 주요고비를 외곽에서만 지켜봐야 했다.

그는 자신을 「실세」 등으로 표현하는데 대해 거부감부터 보였다.

『3허니 뭐니들 하지만 그런것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고 우선 주장한다.

87년초 5년만에 귀국,13대 총선때 민정당 공천으로 부산 동구서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신뒤 현재 이 지역의 민자당 위원장을 맡아 재기의지를 다지고 있다.

『당시의 기성정치가 정치의 요체인 관습·제도·체제의 개혁과 창조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 신군부가 정권을 담당키로 결정한 계기였다』고 5공 출범의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한다.

그는 『그러나 이·장사건의 처리와중에서 정권의 자정의지가 「내부의 벽」에 부딪혀 크게 퇴색됨을 느꼈던게 사실』이라고 부연하는 걸 잊지않았다.

하지만 「내부의 벽」의 정체에 대해선 『나름대로 모두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만큼 5공의 역사적 심판이 내려지기까지는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이내 함구한다.

그는 또 『6공이 중대고비를 맞고있는 시점에서 5공 얘기를 꺼내는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당시는 사람들도 잘몰랐고 정치적 안목도 크게 부족했고… 』라며 말끝을 흐린다.

허씨는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5공초 사정의 중책을 맡아 실세의 위치에 있었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당시의 서슬퍼렇던 개혁조치가 낳은 부작용때문에 지금도 그를 보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다시금 자신을 시험대로 올려놓고 있다. 「옷은 갈아입을 수 있어도 진실은 하나」라는 말로 정치수업의 변을 밝히는 그가 앞으로의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무척 궁금하다.<글·이유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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