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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분위기 쇄신 절박”/취임 1백일 맞은 노재봉국무총리(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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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분위기 쇄신 절박”/취임 1백일 맞은 노재봉국무총리(초대석)

입력
199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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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기 맞아 사고전환 더뎌 문제/투기봉쇄 급해 실명제는 그후에”/“내각 책임제 대통령제와 달리 다양한 예비지도자 양성 장점”/【대담=장명수 편집국차장】노재봉 국무총리가 오늘(5일) 취임 1백일을 맞는다. 21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88년 12월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2년만에 국무총리가 됐을때 국민들은 어리둥절 한채로 이 의외의 총리를 맞이 했었다. 그후 1백일동안 새 총리는 정치권력의 비집중화,경제력의 비집중화,행정권한의 대폭적인 민간이양,국민정서 함양이라는 네가지 시책목표를 내세우고 열정적으로 일해왔다. 『총리란 너무 힘든 직업이어서 1백일을 자평해볼 겨를 조차 없다』는 그를 만나본다.

▼지자제 기초의회 선거에서 친여인사들이 대거 당선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기초의회 선거는 정치적 의미가 없으며,여권의 승리란 정치권의 해석일 뿐입니다. 행정부로서는 그런 해석에 관심이 없고,오직 이번선거가 공정하게 잘 치러졌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몇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이번선거는 선거문화를 바로 잡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고 봅니다. 새로운 정치문화는 결국 선거를 통해 만들어 갈수밖에 없는데,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도 국민의 뜻과 기대와 정치수준이 제대로 투영되어 정치 문화가 개선될 수 있도록 행정부로서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기초의회 선거의 낮은 투표율에서도 드러났듯이 국민의 정치적 불신과 허무주의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87년 6월의 정치적 열기가 정치발전으로 이어지지못한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특별히 어느 한집단에 압도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상황은 정부·국민·정당 등이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한 대변혁을 겪으며 각기 자기조절을 하고 있는 과도적 진통기라고 볼수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치 탈피못해

6·29전후의 정치적열기는 정치구조에 대한 부분적 개혁요구가 아니고 체제전반에 대한 개혁요구였으며,그 결과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헌정 구조를 갖게 됐습니다.

권력분립도 수평적 분립뿐아니라 지자제로 수직적 분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과거 정부의 기능중 많은 부분이 언론·기업·노조 등 사회집단으로 이관되고 사회권력이 집단화돼가고 있습니다. 사회권력이 집단화돼야만 각 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투영되고 권력의 비집중화로 민주주의 구조가 튼튼해질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국민인데 6공들어 국민은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정치적 혼란의 책임이 특별히 어느 누구에게 있다고 탓하는 것은 정치 발전을 위해 도움되지 않습니다.

국민의 정치적 허무주의는 특히 정당 행태에 대한 염증에서 왔다고 보는데 여도 야도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치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정치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서도 앞으로 치를 몇차례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국민여론이 정부를 리드하고,일본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리드하는 면이 강합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정부와 사회집단이 동시에 리드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정부의 기능이 압도적으로 큰것이 사실인데,정부의 기능은 과거와는 다른점에서 커졌습니다. 정부는 어떻게하든 민주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큰 원칙을 위해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체질과 모습을 갖춰야하며 새로운 정부운영을 해야합니다. 국민의 눈에 좀 답답하게 보일지 모르나 사고의 전환을 이뤄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고의 전환이 이처럼 더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부는 정치권뿐 아니라 각 계층에서 사고의 전환이 시대변화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이렇게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의 정치에 있다고 봅니다. 경제발전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이로인한 통로를 열어줘야 하는데 과거의 정치권력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 이었습니다. 억눌렸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형태를 잡지못하고 혼미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본 노태우 대통령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입니까.

『시대적 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정부 모든것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오늘과 같은 복잡한 사회구조에서는 상당부분을 민간이 맡아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혼란을 겪더라도 대통령은 이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너무 약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대통령이나 정부가 약하다는 불평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 요구의 상당부분은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일때가 많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던 권위주의 시대의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 눈에는 대통령이 약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시대에 정부가 어디로 가야되느냐는 판단에서 분명하고 강합니다. 민주적인 새시대의 요구로 본다면 합당하고 강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은 화가 날수록 웃으면서 말하는 분입니다. 누가 뭐라든 인내하고 기다리며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강한 대통령이 아니겠습니까』

▼6공들어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되다가 조순 부총리·문희갑 경제수석의 퇴진과 함께 경제개혁 정책도 도중하차한 느낌이 듭니다. 금융실명제를 하기에는 아직 빠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융질서 바로잡기 총력

『금융실명제는 일련의 경제개혁 정책에서 마지막 부분입니다. 금융실명제로 가기위한 전제 조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기의 소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실명제를 추진하는 동안 극심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고 돈이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경제질서를 잡은후 최후단계로 실명제를 시행해야 합니다. 지금 투기를 봉쇄하고 금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실명제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6공초기의 실명제 추진은 너무 빨랐기 때문에 불필요한 혼란을 겪었던 것입니까.

『목적의 설정은 빨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향해서가는 여러가지 조치들 중에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낙동강 식수오염 사건의 와중에서 환경처 장관이 교체되지 않자 장관의 책임 한계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장관은 어떤 경우 어떤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환경개선 대책이 더 급해

『행정정책이나 행정체계가 잘못돼서 어떤일이 일어났다면 장관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정책의 잘못이 아닌 사고일때는 물러나는 대신 개선을 해야합니다. 무슨 일이든 성격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물러난다면 장관은 소모품이 됩니다. 낙동강 식수 오염 사건은 행정체계나 정책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므로 환경개선 정비 체제를 갖추는것이 문책보다 더 시급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기업·국민이 물문제,환경문제에 대해 크게 각성하고 서로 가능한 모든 협조를 해야한다는 충분한 교훈을 얻었다고 봅니다』

▼총리께서는 대학교수이던 80년대초에 내각책임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당제도가 확립돼야 한다는 이유로 내각책임제에 반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각책임제는 정당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오늘 우리의 정당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명망가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고,정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낮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들이 국민적 정당으로 성장하고,그것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내각책임제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동안 정치를 이끌어갈 지도자 예비군이 양성되지 못했고,지속적인 국가운영을 위한 충원이 잘안된 면이 있습니다.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제와 달리 지도자가 복수로 나타나고,예비지도자 양성에 보다 적합한 가장 큰 부분은 다양한 지도자가 없어 희망을 걸 대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럼으로 우리 실정에 대통령중심제가 지속될 경우의 몇가지 폐단을 고려할때 내각책임제를 추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견이고 결정은 정치권의 합의에 달린 문제입니다』

○세대갈등 통합능력 필요

▼정치의 새대교체론,물갈이론이 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지도자의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인의 세대교체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투표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역사적 시기에 맞는 지도자 계층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입니다. 물론 상투를 틀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는 없을것이며,여론을 통해 지도자의 요건이 모아질 것입니다. 한가지 우선 떠오르는 것은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세대간의 엄청난 격차인데 세대간의 갈등,가치관,이념의 차이가 혼재하는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자면 어떤 인간상이 요구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점은 지도자의 요건중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세대 정치지도자의 유력한 후보로 노총리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전에도 밝힌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학문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 종류의 소문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정치학자와 정치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정치가의 세계란 의지의 세계이고,정치학자의 세계는 이성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총리께서는 총리란 정치가가 아니고 정부운영을 위임받은 사람이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굳이 정치가가 아니라고 말한것은 정치가이기를 거부한다는 뜻입니까.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정치가라면 그렇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계실때 내각과 비서실의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지금 내각과 비서실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청와대 비서실이 소내각의 성격을 띠게되면 내각과의 업무분담이 애매해지고 특히 대통령제 아래 총리의 성격이 애매해진다는 생각에서 비서실장 시절 대통령께 이의 개선을 건의드린적이 있었습니다. 큰 노선은 청와대에서 결정하고,실천과 업무조정은 내각에서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며,대통령께서도 이런식의 분업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시므로 현재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6공이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권력의 누수,특히 공무원의 근무자세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정부에 직접 들어가보시니 어떻습니까.

○국민공복의식 자리잡아가

『과거 행정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권력의 누수라 하겠으나 모두가 자율성을 갖고 나가야 하는 새시대에 비추어 본다면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공무원은 대통령이나 5공·6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예가 이번 지자제 선거인데 대통령께서는 여가 이기든 야가 이기든 행정부는 상관말고 공정선거 관리만하라는 엄명을 내리셨고,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공직자 비리 전담기구를 발족시키는 등 사회분위기 쇄신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주기적이었던 과거의 비슷한 조치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 조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는 아무것도 안되겠다,이제 정말 한계에 도달했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나온것입니다. 성공할것이냐 아니냐 이전에 그것은 기필코 이루어야 할 우리의 운명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또 국민을 향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만은 협조와 성원을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우리가 나갈길은 없다는 절박한 공동인식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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