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협력해야인권을 다시 생각하자. 인권개념을 폭넓게 재구성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이런 진단을 내리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게된 배후에는 물론 최근 우리모두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환경문제가 있다. 환경오염과 파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두산 페놀유출사건과 대구시민의 식수공포를 경유하면서 환경에 대한 국민적인 각성과 시민운동이 광범하게 일어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산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그칠줄 모르고 있는 것을 보면 기업도 이제는 정말 정신차릴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정신적불안과 집단심리의 특성으로 인해 모든불만을 두산이라는 하나의 표적에 맞춰 발산시킴으로써 우리가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식으로 개혁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다소 값싸게 유실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도 든다.
이런 관점에서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인권이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인권의 발전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의 자유,학문·사상·언론의 자유,집회결사의 자유로부터 출발하여 보편선거권과 참정권 복지권을 거쳐 이제는 환경권이 핵심적인 인권으로 발전한 단계가 되었다.
적어도 서구사회에서는 그렇다. 모든 시민이 관료행정이나 재벌기업 또는 어떤 사회적 특권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법에 보장된 인권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며 그 권리를 국가가 실제로 보호해 주는 것,바로 여기에 민주주의의 요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유감스럽지만 두가지 수치스러운 경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국가권력이 인권을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침해하고 억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이 생명에 관련된 귀중한 인권을 무방비상태에 방치시켜 빈껍데기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노동계에서 오늘날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며 후자는 환경문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첫번째 경향에 관해 몇가지 자료를 제시해보겠다. 노동부통계에 의하면 90년의 전국 노동쟁의 건수는 89년에 비해 무려 80%가 준 3백22건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 의하면 근로기준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조합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90년의 경우 89년보다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매우 현저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노총 등은 구속노동자의 상당수가 업무방해,폭력 등 다른 구실로 기소되어 실제수치는 「사법연감」 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 의하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88년이래 거의 1백%씩 증가한다.
물론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이보다 적지만 「사법연감」은 90년의 수치가 89년보다 3배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민가협」 자료를 보면 90년 1년동안 구속된 신원이 확인된 양심범은 모두 1천8백12명이며 이중 40% 정도가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런 자료들은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에 크게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해외인권단체나 국제노동조직들의 빈번한 탄원,결의문,보고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특히 노동계에 인신구속과 인권침해가 빈발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민간인 사찰로 악명을 떨쳤던 구보안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접한바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국가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환경문제를 보자. 헌법은 우리에게 환경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것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정부의 의지가 약했다. 굴지의 대재벌들이 각종 공해물질을 불법적으로 대량 유출해온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부가 이를 못본체 했던 것이다. 환경오염에 관한 기업비리를 기업주에 책임을 물어 규제할 형사적 수단도 없거나 미비했다. 「황경영향평가제」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었다고 들리며 각 기업에서 「환경관리기사」는 무슨일을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요컨대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조직적인 관심의 결여 또는 환경의 쟁점화를 막는 관행이 널리정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기회에 단순한 감정분출을 넘어 정부로 하여금 「환경범죄」를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식,근본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왜곡의 심각성을 고려할때 국가보안법과 같은 과거의 유제를 전면 청산하면서 그동안 방치된 황경권의 보호를 위해 법체계를 현대화하는 것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 정부와 기업의 환경투자도 과감히 늘려야겠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은 의식전환이다. 자연은 생명이며 「환경범죄」는 후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몰염치한 범죄인 것이다.
기업도 이 점에 눈뜨지 않으면 국내외적으로 곤궁에 처할 것이다. 경제성장도 좋지만 우리가 환경오염국의 대명사처럼 된다면 어찌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환경운동은 그 점에서 노동운동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을 지향하는 도덕적 열정과 순수성으로 서로 만난다는 것이다. 노동과 환경 또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두 지평을 시민운동의 도덕성으로 연결하는 데 우리 서로 협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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