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공화국의 경제정책에 이정표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정표가 있다해도 공약으로 끝난다면 없으니만 못하다. 국민은 수권부여의 반대급부로 통치권자에 실천적인 정책가이드라인과 그 이념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줄 것을 기대한다. 제3공화국때는 『수출 1백억달러,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가 당시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켰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상징하는 경제슬로건이었다. 3공은 결국 이 목표를 관철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희생됐었지만 경제적으로 저개발국에서 신생개도국으로 비약하는 결과를 얻었다.『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신감의 발현은 무서운 발전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제5공화국에 와서는 3공이 깔아놓은 레일위를 관성주행한 것이다. 물가안정이 집권 당사자들에 의해 치적으로 손꼽히고 있으나 철도,항만,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소홀이 오늘날 해· 운의 병목현상을 물려주고 있다. 제6공은 정치적민주화로 3,5공의 강권적 권위주의 체제와는 다른 정치적 환경에서 출범했고 또한 국제무역환경도 대미흑자의 증폭 등 한·미 무역마찰이 심화되는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출발했다. 안으로는 노사분규의 격화,밖으로는 국제수지의 흑자 확대,시장개방 압력의 강화 등 경제정책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또한 88올림픽의 성공적 매듭은 국민적자긍을 잔뜩 높여줬다. 제6공은 경제성장보다는 분배정책에 주의를 돌렸어야 하는데도 실기했다. 흑자증대에 따른 돈의 풍요,올림픽 대축제에 마구 풀어놓은 돈은 토지,아파트,주택 등 부동산투기의 광란을 일으켰고 수입개방과 해외여행 제한의 대폭완화는 과소비와 사치풍조를 조장했다. 그런가하면 재벌기업들은 어려워진 수출환경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물타기,뻥튀기 등 재테크에 앞다투어 뛰어들어 재미를 톡톡히 봤다. 주무부처인 재무부는 주식 과수요로 기업들의 물타기,뻥튀기를 외면했다. 이러한 재테크의 비리는 기업이 선의의 투자자의 부를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6공의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이 엄청난 경제적 왜곡과 파행적 사회풍토를 가져왔다. 뒤늦게 분배론자인 조순교수(서울대)를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영입했으나 1년도 못돼 밀려났다. 내각의 운영도 능률적이었던 제3공과는 크게 다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인지 경제각료를 포함한 내각이 1년을 넘기지 못한다. 각료가 업무를 파악,운신을 해보려고 할때 쯤이면 쫓겨나곤 했다. 『소모품장관』이다. 한국의 경제각료들이 워싱턴에 오면 찾아보는 칼라·힐즈 미무역대표(USTR)는 친숙해진 모상공장관이 경질되자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바꾸냐』고 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조순부총리는 퇴임후 지난 1월 대통령의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새로운 정책을 펴려면 ▲통치권자의 이해 ▲언론계의 지지 ▲정부부처간의 협력이 필요하며 또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분배는 제6공의 국사일정에 올라 있지 않은 것 같다.
현 시점에서의 최대 경제문제는 물가안정이다. 지난 3년 사이에 아파트,주택가격이 4,5배 폭등했다. 전·월세값이 치솟는 것도 당연하다. 인건비,서비스료 등 각종요금이 릴레이경기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근로자임금은 한자리수로 묶겠다고 한다. 임금과 물가의 고리를 끊겠다고 한다. 6공의 경제정책은 지금까지 의도적이든 아니든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없는자보다는 있는 자편에 섰다.
가장 웅변적인 것은 통치권자가 꼭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던 실명제의 사실상 폐기다. 지하경제의 조장이라 하겠다. 그뿐이 아니다. 수서파문을 일으킨 한보그룹 계열은 은행의 관리아래 보호를 받고있다.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처리도 3개월 연장해 줬고 여신관리도 주력 기업지정수를 확대,사실상 대폭완화해 줬다. 앞으로 남은 2년이 나마 민생편에 서주기를 기대해 본다.
「재벌 공화국」은 되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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