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으로 걸프전쟁을 안방에 직접 끌어들인 미국의 텔레비전은 새로운 전파시대를 열어놓았다. TV의 위력을 한 단계 높여 과시한 것도 그렇지만,그 기능과 책임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선진의 TV방송은 바보상자라는 과거의 오명을 씻고 정보의 전달과 분석 그리고 오락성을 날로 세련화시켜가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TV문화는 담보도 아닌 후퇴와 퇴영에 빠져든 느낌이 갈수록 더해진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유독 연속드라마와 코미디가 자주 눈에 거슬리게 말썽을 부린다. 언제나 탈은 인기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는 방송사의 과열경쟁 때문에 생긴다.
한동안 고개를 숙인 듯하더니,요즘 또 방송드라마가 바람기를 뿜어낸다. 사랑과 미움,애정의 갈등이라는 드라마의 만년소재를 재탕 삼탕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이해가 된다 해도 불륜을 마치 진지한 고뇌로 묘사하는 버릇은 좀체 청산되지 않는다. 이러한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정상인이 거의 없다. 부자 2대가 경쟁하듯 바람을 피우고 혼외정사를 당연시하며 아내는 그대로 또 한눈을 팔기 예사다. 삼각 사각관계가 난마와 같다. 이래야 꼭 극적 갈등이 고조된다는 것인가. 이래야만 시청자들이 짜릿해져 인기가 치솟는다는 말인가. 불륜의 폐수를 전파로 방류함과 무엇이 다른가.
코미디도 그렇다. 요즘 같은 제작이면 웃어서 복이 올 것 같지가 않다. 지난날의 저질시비는 상당히 진정되고 또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난센스는 크게 가라앉은 셈이다. 그런데 요즘엔 엉뚱한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망신을 주는 「인간모독」의 기획이 버젓이 방영되고 있음은 또 무슨 까닭인가. 툭하면 욕설과 상소리가 퉁겨 나오고 아슬아슬한 외설로 오히려 불쾌감을 가중케 한다. 코미디의 저질성은 권위주의시대엔 소재의 제약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이만한 제약은 크게 완화되었다. 그렇다면 시급한 것은 코미디에 대한 인식과 개념의 전환이다. 불결한 웃음은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는 방송인들의 노력과 개발능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 동안 빼어난 기획이나 감동을 남긴 드라마는 얼마든지 손꼽을 수 있을 만하다. 현실에 밀착해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도 기억해둘 만한 것이 흔하다. 특히 연기자들의 자질과 연기력 향상은 성숙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역연하게 볼 수 있다. 그릇만 좋아서는 소용이 없다.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방송 특히 TV프로는 계도성과 오락성의 조화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가정과 직통하는 전파의 오염은 수돗물의 오염과 다를 바 없음을 방송인들은 깊이 헤아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정제된 전파만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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