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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위원장­./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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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위원장­./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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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께참 수고가 많았습니다. 30년 만에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의 엄청난 업무량­3천5백여 선거구에 후보자 9천9백여 명,6천회가 넘는 합동연설회,인쇄물 배포 3천6백만장,벽보가 36만장에 이르는 선거사무를 감당해 냈다는 것만 해도,치하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로써지방자치 부활의 단초를 별탈없이 열었음을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 앞에 중첩한 각급 선거일정을 생각해서는,이번 기초의회선거 결과만을 마냥 즐거워 할 수는 없습니다. 몇 달 뒤로 다가선 광역의회선거,기일은 미정이지만 대통령이 임기중 시행을 거듭 다짐한 자치단체장선거,내년의 국회의원선거,그 이듬해의 대통령선거­이렇게 해서 앞으로 10년 사이 11차례,20년 동안에는 29차례의 전국적인 선거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선거가 일상화한다고 해야겠는데,지금의 선거제도나 선거관리 태세만으로,과연 그 많은 선거고비를 탈없이 넘길 수가 있을는지,걱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겨우 기초의회선거를 마친 지금 당장의 형세를 보더라도,여·야당은 선거결과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광역의회 장악을 위한 칼을 갈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일부의 말대로,기초의회선거가 「냉동선거」의 흠을 남겼다면,광역의회선거는 되레 「과열선거」로 타락할 조짐이 뚜렷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화 개혁입법의 마무리를 위해 모인다는 새달 임시국회도,결국은 선거법 국회로 시종할 공산이 크고,그 과정에서 각 당의 당리당략이 노골적으로 부딪치게 될 것이 뻔합니다.

나는 이런 이해충돌과정의 결과가,광역의회선거,나아가 그 이후 여러 선거의 양상을 결정짓게 되리란 사실을 두렵게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선거법을 개혁입법 차원에서 다루어야지,이해당사자의 계산에만 맡겨서는 온전한 「선거문화」를 기약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선거제도가 공의에 부쳐져야 함은 물론이지만,선거관리의 주체인 선관위의 역할이 따로 있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선거의 공명을 담보하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선관위의 보다 적극적인 발언,보다 능동적인 몸부림이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선거제도의 재정비가 시급한 데 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방향에도 대강의 합의는 있는 듯합니다. 요약하자면,그것은 ①후보자의 편의 ②후보자간의 기회균등 ③유권자의 이익을 균형시킨다는 원칙 아래,되도록 선거운동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개정방향은 「누구나가 지킬 수 있는 선거법」을 만든다는 것이니,매우 합당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반칙에 대한 응보가 확실해야 함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누구나 지킬 수밖에 없는 선거법> 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그 방도의 하나는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의 시한을 끊는 일입니다. 선거사범이 느린 재판 탓으로 임기가 다하도록 의원의 특권을 누리는 따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선거법상의 연좌제를 강화하는 일입니다. 현행 선거법은 후보자 본인과 사무장의 선거법 위반만을 당선무효의 사유로 하고 있으나,그 범위를 확대,적어도 직계가족이나 비서관은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칙에 대한 응보 중 당선무효 이상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선관위가 고발한 선거사범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는 재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벌칙을 확실하게 하는 한 방도가 될 것입니다.

위에 말한 규제완화와 벌칙의 실효성 확보는,대개 그 방향이 선관위의 견해와 일치되며,89년 이래 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선거법 개정의견에도 상당부분이 반영되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해마다 3차례나 제시한 그 개정의견의 향방은 지금껏 묘연합니다. 우리 선거제도의 낱낱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꼬집어 말하면 선관위의 위상,선관위의 권위입니다,

선관위는 엄연한 헌법기관인데도,국무위원이나 다름없이 국회 상임위에 불려다닙니다. 이런 판국의 선관위의 의견이 먹혀들 까닭이 없습니다.

뿐입니까. 선관위는 예산권이 없어서,선거를 할 때마다 정부의 예비비를 타 와야 합니다. 3백13개 각급 선관위 중 반 이상이 행정관청에 세들어 있고,직원은 시·도 선관위에 10명씩,시·군·구 선관위에 4명씩이 있을 뿐입니다. 시·군·구에는 팩시밀리·복사기·승용차가 한 대도 없고,선거사범 단속장비는 전국에 비디오 카메라 2대,녹음기 16대,무전기 4대가 고작입니다. 맨손의 선거감시원이 오히려 최신 장비를 갖춘 선거운동원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올만도 합니다.

위원장은 이런 줄을 진작부터 알고 심려해 왔으리라 짐작합니다만,나는 이 실정을 처음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인원과 장비를 가지고,이번 기초의회선거를 그만큼이나마 치러냈다는 것이 희한합니다. 그런데도,광역선거를 앞두고 선거구마다 1명씩 8백66명의 증원을 요청했다가 행정부로부터 또 다시 거절을 당했다니 말이나 됩니까.

앞에서 선관위가 발언을 하고,몸부림을 쳐야 한다고 했던 까닭이 이런 데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운동선수가 심판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은 꼴을 면할 수도 없고,경기규칙을 바로 잡을 수도 없으며,행정부 종속의 의혹도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초의회선거의 경과와 결과,그리고 앞으로의 중첩된 선거일정을 보면서,선관위의 역할이 막중함을 새삼 절감합니다. 그래서 더욱 고고하고자 해서 고립됨은 선관위로서 책임을 다하는 방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은 선관위의 적극적인 발언과 능동적인 몸부림에는 반드시 공론의 뒷받침이 있으리란 확신과 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일복 많은 위원장이 더 많은 일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길에 많은 성과가 있기를 빕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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