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거스를 수 있다고 아직까지 믿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홍수로 불어난 강물처럼 도도한 물결로 흘러 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추세를 차단해서 가로막거나 역류시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어떤 힘,어떤 명분으로도 민주화의 추세는 꺾을 수 없게 됐다. 6공정부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은 건국 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땅을 지배해왔던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튼튼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해놓았다는 점이다. 이제는 아무도 민주주의가 좌절하거나 후퇴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강력한 믿음을 갖게해 준 것은 6공정부가 표를 찍어준 국민들에게 선사한 최선의 보답이고 역사적인 선물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6공정부의 집념과 강철 같은 실천의지를 신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탱해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여러 방면에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사분오열된 정치세력들간의 무한투쟁과 사회 제세력들간의 첨예한 대립·갈등,계속되는 정부의 실정과 부패·무능 같은 것들은 모두 민주주의에 위해로운 요소들이다. 30년 전 민주당정권이 1년을 지탱못하고 허무하게 붕괴돼 버렸던 것은 바로 이런 위해요소들을 극복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6·29선언 이후 3년여. 민주주의의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그때와 유사한 제반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집과 편견,정권욕의 덩어리로밖에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정당과 정치세력들,사회 각계각층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욕구분출과 끊이지 않고 있는 시위·분규,대형부패·비위사건의 연속과 범죄의 만연,줄을 잇고 있는 사회적인 대파동과 혼란 등등 우리 사회의 어느 구석에서도 「안정」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위해요소들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위험한 것,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바로 경제불안이다. 경제불안과 정치불안이 짝을 지으면 무쇠도 녹여버릴 만큼 엄청난 파괴력이 생긴다는 것은 남미국가들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의 안정을 수반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를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남미의 교훈이다. 6공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해마다 부동산투기가 일어나 집값을 턱없이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투기야말로 경제불안의 핵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흉기다.
돈이 없어 집한칸 없이 서럽게 사는 사람들에게 해마다 수백,수천만 원의 전세돈을 더 내도록 강요하고 그 평생에는 집을 가질 수 없게 꿈을 빼앗아 가버리는 그런 사회에 사람들이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값과 물가가 해마다 뛰어 벌어도 소용없고 모아도 소용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일할 의욕이 생길 리 없고 경제와 사회와 사람들이 활력을 보일 리가 없다. 안정도 물론 기대할 수 없다. 6공정부가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마무리 완수하자면 투기부터 먼저 뿌리 뽑아야 한다. 2년 정도 기간이 남은 6공정부의 마지막 과제는 투기를 뿌리 뽑고 물가불안을 잠재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광역의회와 총선 대통령선거를 차례로 무사히 치러 또 한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정치적인 외형상의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정착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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