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구 동독인 불만은 「위기」 아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구 동독인 불만은 「위기」 아니다

입력
1991.03.24 00:00
0 0

◎당장 실업·좌절감 있어도 실제 생활수준은 향상/콜 정권서 세금인상·대내외용 전략등 엄살 많아/대 독일로 「동구장악」 발판 굳혀독일 통일은 위기에 처했는가. 3월초부터 에어푸르트시를 시발로 라이프치히,드레스덴,할레 등 동독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는 일견 동독주민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적 곤경과 불만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동독경제붕괴의 부작용이 통일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론의 경고,주민들의 불만표출,그리고 정부의 뒤늦은 「위기인식」표명 등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 상황은 실제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동독경제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요기업의 상당수가 도산했으며 8천여 개 대기업이 신탁관리사에 넘겨져 매각 또는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실업자수는 80만명 선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약 9%로 집계되고 있으나,불완전 고용인구 1백80만명을 합하면 실업률은 30% 선에 이른다.

동독사회의 혼란은 일차적으로 이 같은 대량 실업사태에 따른 것이다. 노동연령 여성의 90%가 취업할 정도로 「완전 교용사회」에서 살아온 동독인들은 무력감과 좌절을 겪고 있고,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실업사태 속의 동독인들이 갖는 불만과 분노의 성격은 시위대가 『품위있는 근로와 생존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데서 읽을 수 있다. 이들은 「꽃피는 낙원」을 약속했던 콜 총리 등 「서독정치인」들에게 『양심이 어디갔느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심리적 혼란과 좌절이 동독인들의 실제 생활수준 악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독주민들의 소득 및 생활수준 향상은 폭발적인 서방상품 구입붐에서 입증된다. 동베를린 중심가 알렉산더 광장 등 동독 각지의 백화점 슈퍼마켓들은 서방상품으로 채워졌고 지금도 구매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독공업의 가동률이 95%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서독상품이 공급됐다. 흑자만 내오던 독일의 무역이 지난달 처음 12억 마르크 적자를 기록한 것도 동독인들의 서방상품 구입열기가 주원인이다.

장벽붕괴 이후 동독인들은 1백만대 이상의 승용차를 서독에서 사갔다. 최근 서베를린의 컴퓨터 상점에는 동독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지나치게 높았던 기대감 때문이란 사실은 정당에 대한 지지도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동독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첫 통일총선에서 「자본주의적」인 집권 기민당을 압도적으로 선호,기민당 압승의 결정적 바탕을 제공했었다. 그러나 최근 슈피겔지의 여론조사결과 서독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기민당 대 야당 사민당이 42% 대 39%로 총선 당시와 변화가 있었으나,동독 주민들의 지지도는 총선 당시의 42% 대 23%에서 34% 동률로 급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16개 주 정부대표로 구성된 연방상원은 3월초부터 통일 비용분담 등 동독 재건지원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한편 콜 총리가 지난해 총선이후 동독지역을 한차례도 방문하지 않은 채 통일전과는 달리 「위기상황」을 강조해 온 것도 통일비용조달을 위한 세금인상 등의 불가피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콜 총리는 총선 때까지 통일비용조달을 위한 세금인상은 필요없다고 공약해 왔다. 그러나 올 들어 걸프전 와중에 동독의 위기에 「충격」을 표시하면서 긴급지원의 필요성을 강조,격렬한 논쟁을 딛고 소득세 7.5% 인상 등을 관철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정부는 지금도 통일이 가져온 어려움을 계속 대내외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최근 푀ㄹ연방은행총재가 『무리한 화폐통합이 파탄을 가져왔다』고 공개발언한 것을 외부 언론들은 콜 정부와의 갈등으로 풀이하고 있으나,진짜 의도는 국내의 어려움을 강조하기 위한 정부와의 「합작품」으로 풀이되고 있다.

걸프전으로 자세를 한층 낮춘 가운데서도 독일은 동독재건에 몰두하고 있고,독일경제의 미래는 탄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동독지역에의 투자지연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폴크스 바겐,오펠,BMW 등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미 수십억 마르크씩을 동독지역에 투자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독일의 무역수지 악화는 대동독 수출이 이제는 「수출」로 집계되지 않는 데 따른 「위장된 악화」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올해 무역수지는 한층 악화될 것이지만,1∼2년내에 독일 경제는 동독기업들까지 가세,한층 거대한 힘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묄레만 경제장관은 최근 『동독기업들은 조만간 동·서유럽 어디에서든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동구에 관한 값진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독일의 「동구장악」에 선도역을 맡을 것을 의심하는 전문가는 없다.<베를린=강병태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