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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새 원년/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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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새 원년/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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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 영국 런던에 큰 불이 났다. 불은 닷새 동안 런던 전역을 휩쓸어 1만3천2백여 동의 집을 태우고야 꺼졌다. 당시 런던의 인구가 40만이었다니 그 피해의 규모를 알 만하다. 영국사람들은 지금도 「대화」(The Great Fire)라는 고유명사로 3백여 년 전 재앙을 기억한다.「대화」보다는 덜 알려졌지만,런던시사는 「대취」(The Great Stink)란 재앙도 기록하고 있다. 1858년 6월 예년에 없던 이른 더위와 가뭄으로 흐름이 줄어든 템즈강이 견디기 어려운 악취를 뿜어낸 것이다. 특히 강가에 자리한 국회는 약물에 적신 커튼을 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끝내 폐회하고 말았다.

그래도 영국은 그 잿더미 속에서,다시는 「대화」가 없는 근대도시 런던을 탄생시켰다. 「대취」를 내뿜었던 템즈강도 되살려 놨다.

「대취」는 64년 올림픽을 앞둔 일본 동경에도 있었다. 원인은 시내를 흐르는 스미다천의 오염이었다. 강에서 풍겨나는 달걀 썩은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스미다병이라 불리는 두통에 시달렸고,악취의 원인인 유화수소 탓으로 인근 명찰의 불상 등 쇠붙이가 모두 변색,놋그릇 장수는 아예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궁리 끝에 일본정부는 시외 다른 강물을 끌어다 스미다천을 희석하는 비상조치를 하고야,올림픽 손님을 맞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스미다천은 다시 맑아져 옛 정취를 되살리고 있다. 대책을 세워 시행한 지 10여 년,70년대말에는 물고기가 돌아오고 중단됐던 한 여름 불꽃놀이 잔치,와세다와 게이오대 사이의 조정레이스를 다시 열어 오랜 전통을 부활시켰다.

이제 템즈와 스미다의 경험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앞의 전철이요 전감이다. 낙동강 젖줄의 「대취」소동이 이를 일깨우고 있다. 우리가 남의 전철을 너무 멀리까지 밟고 왔음을 말해준다. 이러다가는 우리 식수원이 모두 「대취」로 진동할 날이 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남는 물음은 하나뿐이다. 과연 우리도 템즈와 스미다가 경험했던 회생을 연출할 수가 있을까. 그런 기대를 지금의 우리 정치와 행정에 걸 수가 있을까. 이 물음은 더 줄여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남의 경험에서 배우는 지혜가,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60년대 고도성장을 기록하며,도쿄올림픽과 스미다 「대취」를 경험했던 일본은,70년대 들며 경제대국=공해대국으로부터 환경대국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그 계기는 70년 가을 「공해국회」를 소집,3주 남짓한 특별회기중 14건의 환경관계법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래서 70년을 일본의 「환경원년」이라 한다.

비슷한 궤적은 20년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도 나타난다. 80년대의 경제성장과 서울올림픽을 거쳐,90년 봄 임시국회에서 환경 6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법의 이름이나 내용 등이 대개 일본 법을 본뜬 것이라,정부의 「환경원년」 운운이,어디선가 듣던 말 같아서 좀 쑥스럽기는 했지만,환경법제의 새로운 정비가 대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환경법안들은 정부 안에서조차 합의를 못 이루어 알맹이가 빠지고,국회에 제출되고도 여야 정치싸움에 밀려 1년반 동안이나 낮잠을 잤던 것이 일본과 다르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정부의 의지,정치적 합의 등이 20년 전 일본보다도 그만큼 뒤져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태어난 일본과 한국의 환경법제를 조목조목 따지는 일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다만 일본 법제를 본뜨면서 우리나라가 빠뜨린 법률 중의 하나가 「사람의 건강에 관계되는 공해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임을 지적해두고 싶다.

공해범죄법은 공해를 범죄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그 내용중 공해범죄는 개연성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이 법을 빠뜨린 것은 우리 정부에 그만한 인식이 없다는 얘기일 수밖에 없는데,이번 낙동강사건에 대한 국민여론의 방향이 우리가 빠뜨린 일본 법과 같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꼭 낙동강이 아니라도 공해는 분명한 범죄요,「간접살인」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인식을 법으로 반영했어야 옳은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환경실태를 생각해서는 일본의 공해범죄법을 진일보시킨 특별조치법이 있어 마땅하다. 그로써 죄질에 걸맞게 형량을 조정할 뿐 아니라 몇백,몇천만 원의 벌금이나 물리는 법인의 쌍벌규정도,법인의 외형이나,자본금에 비례하여 중과하는 방도를 강구함 직도 한 것이다.

미비하나마 환경6법을 마련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89년 이래 줄곧 식수파동을 겪어왔다. 법을 만든 뒤에도,입법과정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정치와 행정의 인식부족은 여전한 것 같다.

식수 불안이 일 때마다 대통령이 한 말씀을 하고,관계부처는 몇조 원 단위의 탁상계획을 발표하지만,그 시행방안에 있어서는 부처간 합의조차 못 이루는 따위가 그런 예에 든다. 이번 낙동강 「대취」에서도 그런 행태가 되풀이된다면 템즈와 스미다와 같은 회생의 대단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촉구할 것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다. 당장 공해와의 전쟁을 벌려야 하고,「공해국회」라도 긴급소집해서 그 채비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환경 새 원년」을 열어야 한다. 남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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