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고기 멸종… 쌀맛도 변해/폐수·악취 천지… 제2온산화/제3단지 완공땐 하수처리 포기할 판【구미=신윤석 기자】 페놀 폐수를 방류한 두산전자 구미공장은 낙동강을 끼고 양편으로 펼쳐진 3백36개 업체 1천7백47만8천㎡ 규모인 구미 수출산업공단 중 동안 최북단인 2단지 끝머리에 있다. 이 공장에서 페놀을 방류한 옥계천은 구미대교 위쪽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니 공단의 첫머리에서부터 유독폐수로 강을 오염시켜온 꼴이다.
옥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 바로 위까지는 한가로이 물새떼가 노닐고 있으나 아래쪽에서는 참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은폐해온 오염의 실상을 새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이 부근 구포들에서 이른 못자리 준비를 하던 농민들은 『이 근방에선 제일이던 구포 쌀 맛이 공단이 생긴 뒤 변해버렸다』며 『옥계천은 그래도 구미에서 제일 깨끗한 개천』이라고 말한다.
구미대교 건너편에 민물매운탕집들이 있으나 외지에서 양식한 물고기를 사온다고 했다. 『전에는 강에서 붕어·메기·놀래기가 잡히고 가끔 장어도 올라왔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도 없고 누가 잡으려고 생각지도 않는다』는 한 가게주인의 설명이다.
1단지와 맞붙은 낙동강 서안을 따라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서 물 색깔은 잿빛 하늘보다 더 칙칙하고 탁해진다.
강 건너 2단지 아래쪽으로 오는 92년 12월 완공예정인 3단지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그 인근에 구미하수종말처리장(경북 칠곡군 석적면 중리)이 있다. 이 처리장의 1일 처리능력은 12만4천톤으로 1단지에서 나오는 공장폐수 8만톤과 구미시 생활하수 3만톤은 이곳에서 처리되나 5만톤으로 추정되는 2단지 폐수는 공장에서 자체처리한 뒤 그대로 낙동강으로 방류하고 있다.
3단지가 완공될 경우 하수처리능력의 태부족은 불을 보듯 훤하다.
강변도로를 3㎞ 가량 내려온 지점의 온수기공장 앞 배수지 수문을 통해 탕약처럼 시커먼 폐수가 수돗물난리는 모른다는 듯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폐수는 역한 냄새와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끝없이 쏟아져나오고 산업폐기물을 담았던 듯한 드럼통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흉악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겉보기엔 그림같은 갈대밭은 속속들이 폐수 찌꺼기에 엉겨 죽음의 수렁이 돼 있었다.
도로변 쓰레기통에 찍혀 있는 「자연보호」 글씨가 무색하다.
1㎞를 더 내려가자 구미시 끝인 낙동대교가 바라보이는 공단대교 아래로 지천이 하나 유입된다.
흑·적·녹 삼색이 섞인 기묘한 빛깔의 물은 낙동강 본류와 확연한 채색대비를 이룬다.
지천을 거슬러 금오중학교 앞에 이르자 퀴퀴한 기름내가 코를 찌르고 각종 쓰레기가 눈을 어지럽힌다.
복개천으로 흐르다 1단지 중앙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코오롱섬유와 제일합섬 사이 중소업체 밀집지역을 지나는 이 개천의 이름은 광평천.
개천을 가로지르는 제3광평교 부근 구멍가게 주인은 『여름이면 지독한 냄새와 혼탁한 공기 때문에 눈·코를 제대로 뜰 수 없다』며 『일요일엔 폐수가 더 많이 나온다』고 귀띔해준다.
1단지 폐수는 모두 하수처리장을 거친다는 처리장관계자의 말은 거짓말이고 옥계천이 그 중 깨끗하다는 주민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8월 산업폐기물처리업체이면서도 폐수를 낙동강에 흘려보내 적발됐던 (주)금호환경 같은 업체가 입주해 있는 2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산전자처럼 독사의 입 같은 비밀배출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하수관이나 지천에 대고 폐수를 뿜어대는 업체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난 2월 구미상공회의소가 91년도 투자계획을 묻는 조사에서 공해방지시설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한 업체는 25%에 불과하다.
지난 71년 한국전자공업공단으로 출발,74년 수출산업공단으로 개편된 구미공단은 공해방지를 위해 전자기기·부품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었으나 현재 전자업체는 1백53개인 반면 섬유·화학·목재 등 일반업체수는 1백83개에 이른다.
여기에 비산동 등에 몰려 있는 정비공장 세차장 등의 폐윤활유는 처리업자가 나서지 않아 쌓여만 가고 일부 업소는 하천부지 등에 묻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질오염과 함께 공단 근로자들이 출·퇴근길에 한 번씩 피부로 느꼈을 대기오염 실태도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다.
구미의 뜻있는 사람들은 『국내 굴지의 공단지역에 환경처 출장소가 없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환경청을 처로 승격시킨 게 직급 높이기 놀음』이라고 분개한다.
구미시내에 있는 국립 금오공대 장기태 교수(39·토목공학)는 『학교에 공해관련학과는커녕 전공자 한 명 없다』며 『구미공단의 환경오염 실태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객관적인 조사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가 도서관을 다 뒤져 찾아낸 85년도 이 학교 생산기술연구소의 구미지역 수질오염실태조사 논문은 수은,수소이온농도(PH),탁도,중금속오염도 등 4개 조사항목이 기준치 이하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공단 상류보다 하류지역의 측정치가 모두 높아 공장폐수에 의한 수질오염을 입증해준다.
이번 페놀유출사건의 충격으로 장 교수와 함께 지난 21일 「환경보호 및 공해추방을 위한 구미시민모임준비위」를 발족시킨 김재억씨(34·가톨릭근로자센터 사목부장)도 『구미는 상대적으로 공해가 덜한 지역으로 인식돼왔으나 이대로 방치하면 제2의 온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처럼 구미공단의 환경오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으나 기초자료나 조언을 해줄 기관연구소 하나 없는 형편이어서 이들이 「낙동강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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