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업고 독립에 쐐기/경제난 해결 시급… 물리력은 자제 전망/“경제분리 현실성 없다” 협상 병행할듯소련 최고회의가 21일 지난 17일 실시된 연방 존속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를 국민투표 거부 6개 공화국에 강제적용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증폭되고 있는 민족문제를 물리적으로 탄압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련 최고회의는 이날 『소련의 모든 국가기관들과 공화국들은 새로운 연방유지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표현된 국민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민투표 결과가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8개항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연방 산하 15개 공화국 지도자들로 구성된 연방위원회가 국민투표 결과와 연방조약의 원칙들을 고려해 신연방조약안 및 헌법안 마련에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이같은 전격적인 결의안이 나온 배경은 일단 고르바초프가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에서 발트3국 등 6개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는 강경자세를 보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비록 6개 공화국이 참가를 거부했지만 9개 공화국에서 무려 1억2천10만명(소련 유권자의 58.3%)이 연방 존속에 찬성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국민투표 결과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키 위해서는 보수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최고회의에서 결의안을 채택케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고르바초프의 민족문제에 대한 정면대응에 발트3국 등 6개 공화국이나 보리스·옐친 러시아공 최고회의 의장 등 급진개혁파의 반응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으나 자칫하면 유혈사태까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 상당기간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에서는 이미 소련연방군의 움직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군부와 KGB 일각에서는 이번 국민투표로 민족문제에 대처할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은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고르바초프가 당장 민족문제를 해결키 위해 쉽게 무력을 동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소련 연방정부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경제난국을 해결키 위해 오는 4월1일부터 물가를 30년 만에 60% 인상키로 하는 등 시장경제를 향한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할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방국들의 막대한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는만큼 대외적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으려면 물리적 수단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면과제인 신연방조약의 체결을 미룰 수도 없어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투표에 참가한 9개 공화국 중 8개 공화국은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안에 서명할 것을 약속한 바 있으나 최대규모의 러시아공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옐친 의장은 이번 투표에서 독자적으로 실시한 공화국 대통령직선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만큼 연방정부가 정치·경제적 권한을 보다 폭넓게 이양해야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옐친은 국민들의 불만을 반고르바초프로 연결시키는 데 기민한 발걸음을 보여줬듯이 이번에도 고르바초프가 직선이 아닌 간선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앞으로 실시될 러시아공 직선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명실공히 당선됨으로써 고르바초프와 대비되는 정치적 입지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겉으로는 강경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협상테이블에서는 유연한 자세로써 타협점을 찾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즉 바딤·바카틴 소련 안보위원회 위원이 지난 18일 일본 요미우리(독매)신문과의 회견에서 『신연방조약에 조인하고 싶지 않은 공화국은 탈퇴해도 좋지만 적어도 연방과 경제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듯이 연방이라는 틀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연방과 각 공화국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유지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발트3국 등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독립을 외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결코 연방과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을 외면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트3국 등 6개 공화국이 독립의지가 확고한만큼 이같은 연방의 설득에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지도 의문이며 현 연방지도부의 정치성향이 보수파 일색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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