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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중금속이 흐른다(죽어가는 낙동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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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중금속이 흐른다(죽어가는 낙동강:1)

입력
199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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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만 늘리고 처리장 외면/하류선 농업용수로도 부적/“머지 않아 부산지역 취수불능 위기에”공업화는 필연적으로 공해를 낳는다. 낙동강 중·상류에 들어선 수많은 공장들은 경제발전의 자랑스런 상징이다. 하지만 공장건설과 경제성장에 도취해 있는 동안 마구 쏟아진 공장폐수는 영남사람들의 젖줄을 「죽은 강」으로 만들고 말았다.

낙동강은 발원지인 태백에서부터 탄광폐수를 뒤집어쓰고 유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오염은 구미와 대구에서부터이다. 이번 사건의 주범인 두산전자가 들어선 구미공단을 비롯,대구 비산공단·논공공단 등 15개에 이르는 공단에서 쏟아붓는 폐수로 낙동강은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로 쓰기도 힘들 만큼 더렵혀졌다.

구미시내로 접어든 낙동강은 이미 빛깔부터 제 빛이 아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구미천은 시궁창을 방불케 하며 물 밑으로는 퇴적물이 층층이 쌓여 있다. 유수량이 줄어드는 갈수기에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시내를 흐르는 상모천 등 나머지 5개 하천도 사정은 똑같다. 지난 73년 공단이 들어선 이래 계속 확장돼나가면서 공장폐수는 더욱 늘어나고 하천의 오염도 덩달아 심해졌다.

이같은 「시궁창 물」은 다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왜관·달성을 지나면서 자정작용을 거듭하는 낙동강은 잠시 푸른 빛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곳의 수질도 겨우 2급수를 유지하는 수준이며 맑고 깨끗한 1급수의 수질을 되찾기에는 쏟아져들어온 폐수의 양이 너무 엄청나다.

낙동강은 대구를 거치면서 금호강과 뒤섞여 말 그대로 「죽음의 강」을 이룬다. 금호강이 합류하는 경북 달성군 다사면과 화원면 일대는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20PPM을 웃돌 정도이다. 이 수치는 농업용수 기준(8PPM)과 비교해도 2배 이상이다. 마시고 농사짓는 데 쓰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 인근 농토와 농작물에 오히려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강변의 모래밭이 시커멓게 변하고 여름철이면 악취가 진동한다』고 하소연한다. 더러운 물로 농사를 짓다보니 농작물피해는 물론,땅도 잡초조차 자라기 힘든 박토로 변하고 말았다. 인근 주민들이 농사철마다 집단으로 피부병을 앓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류지역인 부산 근처에서의 오염은 이미 최악의 상태다. 부산의 식수원 중 40%를 취수하는 물금취수장의 경우 BOD측정치가 3PPM을 넘나든다. 팔당과 대청호가 2PPM 미만인데도 아우성인 것과 비교해보면 부산의 상수원오염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부산지역 주민들은 정수 후의 부산 수돗물이 정수 전의 팔당 원수보다도 못하다는 불평을 흔히 하고 있다.

낙동강의 오염이 더 심각한 것은 중금속 때문이다. 중·상류에 공단이 많이 들어서 있고 공장폐수가 엄청나게 쏟아져들어오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도 일부 섞여 유입된다. 지난 89년 부산대 환경문제연구소가 실시한 조사결과 경남 밀양군 삼랑진에서 카드뮴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고 합천에서는 발암물질인 6가크롬이,남지에서는 납이 미량 검출됐다.

부산시의 88년 조사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돼 충격을 주었다. 당시의 조사결과는 납과 크롬이 기준치 이내이긴 했으나 미량 검출된 것으로 드러나 중금속 오염문제가 현실로 대두됐음을 입증했다.

낙동강의 오염이 얼마나 심한가는 각종 측정자료보다 주민들의 인식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구미만 해도 맑은 상류의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하지만 대구와 부산 등 하류지역의 주민들은 수돗물에 대해 극도로 불신을 갖고 있다.

민간기관이 대구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9% 가량이 수돗물 대신 생수나 자연수를 마시거나 정수기로 거른 물을 식수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주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은 시내 약수터를 찾아 밤늦게까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휴일이면 승용차에 물통을 싣고 인근 양산·밀양 등지로 나가 자연수를 받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의 4대강 중에서도 낙동강의 오염은 가장 심한 편이다. 환경처가 매달 측정하는 자료를 보더라도 안동을 제외한 낙동강 수계는 2∼3급수 수준으로 음용수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 고령의 경우엔 89년에 BOD가 13PPM까지 올라가는 등 농업용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하수처리능력이 부족한데도 계속 공단을 확충하는 것이다. 7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구미공단은 81년까지 제2공단을 확장한 데 이어 지금도 제3공단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상류의 점촌지역에도 농공단지가 조성돼 주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공단은 늘어나는데 하수처리장 건설은 뒤따르지 못해 낙동강의 수질회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부산대 김동윤 교수(환경공학과)는 『대대적인 수질개선사업을 벌여도 낙동강의 회생여부가 불투명한데 대책없이 공단만 늘려 낙동강은 완전히 죽은 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머지 않아 부산 등 하류지역에서는 취수불능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원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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