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침해” 여론에 콜총리 미온대응 의혹/“통일승인 대가로 넘겨줬다” 공모설 대두소련이 지난 13일 호네커 전 동독공산당 서기장을 소련으로 빼돌린 사건을 놓고 지금 독소 양국간에 티격태격 한창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양국간의 표면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데 불과할 뿐,내면적으로는 독일통일과정에 얽힌 독소 두 나라 사이의 은밀한 「공조관계」를 재확인시켜준 것으로 드러나 독일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베를린 근교 베리츠의 소련군 부대에 연금돼 있던 호네커가 「잠적」한 사실은 14일 하오 호네커를 찾아갔던 그의 변호사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져 이날 저녁 독일정부는 소련 대사를 총리실로 소환,「주권침해」를 항의,호네커의 신병인도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에 앞서 13일 아침 의회에 참석중이던 콜 독일 총리는 한스·요헨·포겔 사민당 의장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포겔당수를 「호네커동료」라고 부르는 실언을 했다.
호네커 잠적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총리실측은 『호네커가 독일을 떠나기 1시간반 전인 13일 상오 10시께 소련 대사로부터 사전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소련측을 제지할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콜 총리의 「실언」도 의회참석중 소련측의 통보를 보고받은 데서 빚어진 것이란 해명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독일정부가 하루 뒤 우연히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침묵해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또 독일정부는 소련 대사를 소환한 자리에서도 콜 총리 명의로 공식항의를 제기하지는 않은 채 법률적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쳤다. 강력한 항의조치의 일환으로 대소 경제제재 등을 취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리실 대변인은 『호네커가 수십억 마르크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할 정도였다.
호네커는 동·서독 장벽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이미 지난해말 베를린주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 따라서 그의 국외이송을 막지 않은 것은 주권침해를 방관한 것이란 비난이다.
언론들은 특히 독일통일에 관한 이른바 「2+4」협정이 소련 의회의 비준을 거쳐 14일 독일측에 정식 전달돼,이날 독일이 공식적으로 완전한 주권국가가 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여론 속에 소련과 독일정부는 모두 여론무마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소련 외무부는 호네커를 독일 영토 밖으로 이송한 것은 「기술적으로는 독일주권침해」라고 시인하고 나섰지만 호네커의 신병이 악화돼 인도적 견지에서 치료시설이 나은 소련으로 이송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콜 독일 총리와 겐셔 외무장관은 15일 주권침해를 강력히 항의하면서 「즉각 송환」을 촉구했다.
그러나 주무장관격인 킨켈 법무장관 등은 『현실적으로 호네커의 송환과 재판회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독일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당 영수인 포겔 사민당 의장도 『호네커는 불과 얼마 전까지 서독의 국빈영접을 받았었다』며 『그에 대한 모든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나치투쟁으로 10년간 투옥됐던 인물임을 잊을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련 의회가 호네커의 소련이송을 「2+4」협정비준의 전제조건으로 결정했던 것과 관련,독일정부가 「통일완성」을 위해 호네커 처벌을 포기했다는 이론도 제시하고 있다.
구 동독인 드레스덴시의 모르겐포스트지도 15일 『콜은 통일승인에 대한 대가로 호네커를 내줬다』고 주장,『소련은 18년간 「국제공산주의의 영광」을 상징했던 호네커가 독일법정에 서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독일정부도 양해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동베를린의 베를리너 차이퉁지는 『이 해적행위는 정치의 이면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독일과 소련측 양쪽의 이해가 합치된 데서 이뤄진 것』이라고 독소합작설을 주장하고 있다.
또 베를린 타게스 슈피겔지도 『호네커는 당초부터 소련으로 가게 돼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우익보수지 프랑쿠프르터 알게마이네 등은 호네커사건이 주는 「주권국가의 법질서」와 콜 총리 정부의 「국내여론 부담」 등을 우려,비난을 전혀 삼가고 있어 독일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베를린=강병태 특파원>베를린=강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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