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후 외교적 냉대·경제보복 받아/정치지도자들 “오해 풀자” 미국행 러시/지식층 반미여론 격화·지도력 부족 비난도걸프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따돌림을 당한 일본이 미국의 환심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외무장관이 부랴부랴 미국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총리는 미국행티켓을 얻지 못해 안전부절이다. 집권 자민당이 실력자들도 앞다투어 미국에 가겠다고 티켓예약이 한창이며,쿠웨이트와 페르시아만의 환경문제 해결에 자진해서 돈을 내놓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은 걸프전쟁 후 급속히 소외된 「세계 속의 일본」의 자리를 끌어올리려는 외로운 몸부림이다.
20일 미국을 방문하는 나카야마(중산태랑) 일본 외무장관은 부시 미 대통령과 베이커 국무장관을 만나 「미일 관계의 재구축」을 협의한 뒤 이례적으로 의회지도자들과도 만날 예정이며 내외 기자들과의 회견스케줄까지 잡아놓고 있다.
걸프전쟁으로 인한 미국측의 「오해」를 풀자는 것이 당면목표이고,그 다음은 가이후(해부준수) 총리의 방미 일정을 못박는 것이다.
이달 24일 소련을 방문하는 오자와(소택일랑) 자민당 간사장도 귀로에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다케시타(죽하등) 전 총리와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 자민당 정조회장도 4월중 미국방문계획울 추진중이다. 이들 정치인들의 미국행 러시는 올 가을로 예정된 자민당총재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야심의 발로이기도 하지만,삐걱거리는 미일 관계정상화에 일조하겠다는 외교적 사명을 띤 것도 사실이다.
일본 정계가 이토록 미국 지도층의 구미 맞추기에 열심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걸프전쟁 후 의식적으로 일본을 따돌리는 미국 조야의 의도적인 태도 때문이다.
걸프전쟁에 돈만 냈을 뿐이지 피도 땀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이 일본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낸 것은 부시 대통령의 일본방문 무기연기조치였다. 부시 대통령의 올 봄 일본방문계획은 지난해부터 굳어져 있었으나,지난 7일 미국측은 『걸프전 후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위한 외교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일본정부에 방문무기연기를 통보해왔다.
부시 대통령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른 서방국가 수뇌들과 연쇄회담을 갖고,베이커 국무장관이 다국적군에 가담하지 않은 독일의 겐셔 외무장관을 외무장관회담에 초청하면서도 일본만 빼돌린 것을 서운해 하고 있던 일본에는 청천벽력 같은 쇼크였다.
또 있다. 지난 9일 쿠웨이트방문을 위해 출발하려던 오자와(소택일랑) 간사장에게 미국이 쿠웨이트 입국 헬기편 제공을 거부,오자와의 중동순방계획이 취소된 일이다.
이집트항공사로부터 전세점보기까지 불러왔던 오자와 일행에게 미국이 헬기제공을 거부한 이유는 본국으로 수송할 미군병사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었다.
이같은 외교적 냉대말고도 미국은 대내적으로도 일본에 혹독한 「보복」조치를 가하고 있다. 올해 1월에 시작된 미국의 정기국회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한 보복입법 및 결의안이 34개나 제출돼 있다고 한다.
이 법안들의 내용은 통상 금융 투자 등 대일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걸프전쟁에의 공헌이 부족한 나라에는 수입품에 20%의 과징금을 매기자는 노골적인 보복법안까지 들어 있어 일본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전후에라도 인적 공헌을 해야 한다면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자위대원을 파견하려 하고 있으며,독일처럼 자위대 소해정을 보내 페르시아만의 기뢰제거에 일조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계획은 지난해 가을 자위대 파병 논쟁 때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어 일본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지도력 부족」 「결단력 부족」 등의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반면,『일본은 미국의 스폰서일 뿐인가』하는 반미여론도 날로 격화돼 앞으로의 미일 관계에 장애요소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19일 외무성 외곽단체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걸프전쟁을 계기로 한 미일간의 관계추이를 지켜본 일본의 지식층의 반미여론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같은 처지의 독일보다 훨씬 많은 1백30억달러를 내고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은 미국의존일변도의 일본외교를 뿌리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회의론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줄지어 미국으로 가는 일본지도자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올 것인지,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어하는 일본의 욕망이 언제쯤 달성될 것인지,아시아 유일의 선진국 일본의 「세계 속의 위상」이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동경=문창재 특파원>동경=문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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