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을 승리로 이끌고 새로운 전후 중동질서를 짜고 있는 미국과 다국적군 진영이 걸프사태에서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전폭 지지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야세르·아라파트의장에 대한 노골적인 고사작전을 전개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걸프전종 전직후부터 미국과 서방,심지어 친미 아랍국가들은 PLO가 후세인을 지지함으로써 신뢰성을 완전 상실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할 새로운 대체세력 구성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중동재편 논의서 완전 따돌림/「시리아이」 카드로 분열조장/아라파트 아직 건재… 배제땐 팔 문제 근본해결 난망
최근 사우디의 한 고위관리는 뉴욕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PLO와 아라파트를 버리도록 적극 고무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화해를 통한 아랍이스라엘분쟁 해결에 우선 초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관리의 말처럼 다국적군 진영은 이미 아라파트 의장을 중심으로한 PL0지도부 제거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이며 지난 5∼6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아랍 8개국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PLO는 이번 걸프사태로 걸프 왕정국가들의 자금지원이 중단되고 6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이들 국가에서 추방돼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PLO에 대한 와해공작이 본격화 됨으로써 PLO는 지난 64년 기구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고사위기에 처한 PLO와 아라파트의장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앞으로 사태 전개를 전망해 본다.
▷PLO◁
PLO는 지난 64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주도하는 아랍연맹의 후원 아래 창설됐다. 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국에서 쫓겨나 아랍각국에 흩어져 살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을 결집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대 PLO의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나세르 대통령과 가까웠던 아마드·알·슈카이리가 선출됐으며 이집트군 지휘 아래 팔레스타인해방군(PLA)도 구성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 PLO내 핵심세력은 야세르·아라파트가 이끄는 파타(Patah)였다. 파타는 이집트 카이로 대학내 팔레스타인 학생동맹을 주도했던 아라파트가 살라·하라프,하릴·알·와즈르 등과 함께 결성한 무장투쟁조직으로 69년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게일라공격을 가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우상으로 부각됐다.
PLO의 공식조직은 의회역할을 하는 최고결정기구인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PNC)산하에 상설기구인 중앙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내각에 해당하는 PLO집행위원회가 실무행정을 하고 있다. PNC는 현재 PLO내 각 계파가 지역을 대표하는 4백4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80여 명이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PLO집행위원회는 정치·군사·경제·사무국 등 4개 부처로 나누어져 있다.
PLO의 가장 중요한 조직은 정치기구보다는 군사조직이다.
PLO의 군사조직은 그 특성상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에 놓여있지 못하며 이 군사조직을 배경으로한 한 각 계파간 내분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PLO의 정규 군사 조직인 PLA군은 아랍 각국에서 주둔국군의 지휘하에 전쟁에 대비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PLA군은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각국에 흩어져 있으며 총 병력은 1만명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규군과는 별도로 PLO내 주요 분파들은 독자적인 게릴라 부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레바논·시리아 등을 무대로 이스라엘군과 직접 싸우거나 테러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또 독자적인 정치조직도 갖고 있다. 최대 조직은 역시 아라파트가 지휘하는 파타로 조직원이 3만명이며 게릴라 수도 9천명으로 가장 많다. 72년(?) 뮌헨올림픽 때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인질극을 벌였던 이른바 「검은 9월단」도 파타조직의 일원이다.
파타를 제외한 군사조직들은 아라파트 의장이나 파타노선에 불만을 품고 독자행동에 나선 세력들이다.
이중 가장 강력한 조직이 1만명의 조직원과 5천여 명의 게릴라를 갖고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이다. 67년 결성된 PFLP는 74년 아라파트 PL0의장이 전 이스라엘 영토가 아닌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동예루살렘을 거점으로한 미니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의사를 밝히자 이에 불만을 품고 PLO에서 공식 탈퇴한 뒤 조직한 급진적 조직이다.
PFLP의 지도자는 조지·하바시로 가장 열렬한 범아랍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PFLP는 투쟁성과 실제 게릴라 활동면에서 한때 파타를 위협할 만큼 강력해졌지만 69년 3개 조직으로 핵 분열해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PFLP에서 갈라져 나온 PFLP사령부파는 시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시리아와 레바논에 3천명의 게릴라들을 확보하고 있다.
PFLP사령부파는 투쟁성면에서 PFLP에 뒤지지 않기 위해 가장 활발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난 2년사이 이스라엘 영토에서 각종 테러공격을 주도해 왔다.
이밖에도 수백명 남짓한 소규모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있는 각종 조직은 1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조직들은 투쟁노선이나 이념의 차이 이외에도 각각 독자적인 아랍지원 세력을 배후에 업고 있어 내부 갈등을 심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같은 분열상은 88년 개최된 PNC총회에 2개 조직을 제외하고 전원의 대표가 참석함으로써 새롭게 단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라파트의장◁
지난 21년간 PLO를 주도해온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난과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29년 카이로에서 태어나 카이로와 동예루살렘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아라파트는 58년 카이로 대학을 졸업한 뒤 쿠웨이트로 진출,건설회사를 경영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아랍정권의 무관심에 분노,59년부터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 쿠웨이트에서 소수 대학동창을 규합,「우리 팔레스타인」이란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아라파트는 곧이어 지하 게릴라 투쟁조직인 파타를 결성,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섰다.
65년 소수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가한 아라파트는 금세 팔레스타인인들의 영웅으로 등장했고 수많은 게릴라들을 규합,세력을 확대해 갔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팔레스타인인 탓으로 아라파트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70년 9월 요르단내 팔레스타인 게릴라 들을 공격,소위 「검은 9월」사건을 일으켰다.
아라파트는 직접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지휘하며 10여 일간 요르단군과 맞서 싸웠으나 결국 패배,레바논으로 철수했다.
레바논 남부로 지점을 옮긴 PLO게릴라 세력은 다시 그 전력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에 공격을 가했으나 82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이에 놀란 시리아군이 PLO거점을 포위,철수를 종용하는 바람에 또 다시 레바논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이때 이스라엘군은 아라파트를 암살하기 위해 집요하게 아라파트행방을 추적했으며 그의 아라파트에 폭격을 가해 2백명의 주민을 못살게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85년에도 튀니지로 옮긴 PL0본부에 기습폭격을 가해 73명이 사망했으나 아라파트는 때마침 산책을 나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80년대말 아라파트는 정치·군사적으로 패배의 늪에 빠져 있었으나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인티파다」가 불이 붙고 이에 대한 동정적 국제여론이 조성되자 정치적으로 회생할 수 있게 됐다.
▷PLO와 아라파트의 향후 운명◁
미국을 중심으로 한 PLO에 대한 공세가 아라파트 개인의 거세를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PLO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PLO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두가지 모두가 결국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라파트는 이번 걸프전에서 패배가 분명한 후세인을 끝까지 지지함으로써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같은 공격은 PLO 내부에도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는 아직도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라파트를 제거하려는 외부의 노력은 오히려 아라파트에 대한 지지와 결속을 강화시켜줄 가능성도 있다.
암만 주재 팔레스타인 대표부의 공보책임자인 이브라힘·바르흠씨는 최근의 반 PLO 움직임에 대해 『PLO는 미국이 만든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조직한 것이다』라며 『PLO 배제하고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은 전혀 의미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말은 PLO관리로서 PLO를 옹호하는 것이지만 PLO나 아라파트 의장을 완전 배제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요르단 강 서안(이스라엘)="배정근" 특파원>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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