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정부 「5·8대책」/“은행제재조치” 정부상대 행소는 불가능/추가이자등 대상 「여신관리」 사실상 도전/“월권이다” “상거래계약” 맞서정부의 5·8대책이 법정에 서게 됐다.
그 동안 대규모의 부동산을 비업무용으로 판정받은 일부 재벌그룹들이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며 정부의 「비업무용 판정→강제매각요구」 조치에 대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해왔기 때문에 조만간 이를 둘러싼 소송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의 경제활동이 아직 정부로부터 완전한 자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정재벌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미움을 사게 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여전히 위력적이어서 쉽게 소송사태가 현실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견이 겹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금호그룹이 용인골프장 부지에 대한 비업무용 판정이 부당하다며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
금호그룹은 문제의 비업무용 땅을 그냥 방치한 채 투기적 목적을 위해 묵혀 둔 것도 아니고 이미 5·8대책 이전부터 계획에 따라 착착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므로 비업무용 판정이 명백히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세청의 판정에서 이 부지가 비업무용 판정을 받게 된 이유는 골프장이 광주고속의 주업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금호그룹은 골프장에 대해서는 별도의 구분경리만 하면 이같은 적용을 받지 않으며 용인골프장은 이미 89년의 건설 초기부터 독자적으로 회계처리돼 왔으므로 이러한 규정 적용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5·8대책 이후 8월에 마련된 보완대책에 따르면 건설중인 골프장도 부동산가액의 7%만큼은 기준수입금액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용인골프장 부지에 대한 비업무용 판정은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호그룹의 소송은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아니라 주거래은행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재벌그룹이 직접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가 부담스러워 민간기업인 은행을 소송상대로 고른 게 아니다.
소송대리인인 이정호 변호사에 따르면 행정소송을 하고 싶어도 행정소송이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행정소송을 위해선 그 원인행위로서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이 있어야 되는데 이번의 비업무용 판정은 사실상은 국세청이 내린 게 명백하고 그 결과가 은행감독원을 거쳐 주거래은행으로 통보됐으나 실제로 드러나는 것은 주거래은행의 제재조치지 행정처분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금호그룹의 소송제기에 대해 덩치큰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한 롯데 한진 현대 대우 등 다른 재벌그룹들은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때 소송을 고려했던 롯데그룹의 경우 여전히 『소송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롯데 등 다른 재벌그룹들은 수시로 소송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의 구체적 내용은 13억원의 추가이자 부담을 취소하라는 것으로 어쩌면 사소한 듯하지만 그 배경에는 민간기업인 은행이 대출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민간기업인 여신관리대상 업체들의 영업활동과 재산취득을 제한할 수 있느냐는 논리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의 결과는 다만 5·8대책의 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지난 70년대 이후 20여 년간 지속돼 온 정부의 여신관리제도의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해주게 된다.
지금까지 재벌의 부동산 과다보유를 억제하는 주요수단인 여신관리규정은 법률에 토대를 둔 게 아니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규정이었다.
5·8대책의 경우에도 수시로 사후적 보완조치가 계속된 행정행위였다.
은행의 여신관리 행위가 월권이라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은행감독원과 은행들은 기업이 은행돈을 많이 쓰고 있는만큼 그에 따른 일종의 상거래계약으로 여신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법정에서의 논란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단적으로는 여신관리를 받지 않으려면 은행돈을 다 갚고 쓰지 말라는 주장이다.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정당성과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의 정당성은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소송은 반드시 한차례 겪고 지나가야 할 정부부동산정책의 「통과의례」이기도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홍선근 기자>홍선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