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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장전을 만들자/유영종(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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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장전을 만들자/유영종(아침조망)

입력
199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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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분위기가 미지근하다. 차분한 것인지 냉각된 것인지,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수서의혹에 대한 관심이 산불처럼 치솟고 번진 데 비하면 지방의회선거전은 마치 모닥불 같아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선거에도 열탕과 냉탕이 있는가. 50년대 3·15부정이 「열의 선거」라고 한다면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선출은 「냉의 선거」였다. 건국 이후 50여 차례의 각종 선거는 극과 극을 오락가락한 열과 냉의 반복이었다고 할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대국민 훈계가 많다. 이번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부와 민자당은 지레짐작으로 과열을 우려하며,지방의원선거를 앞두고 미리 대단한 엄포를 터뜨렸다. 그게 적중한 것인가,과열은 기우가 되었다. 뜨거운 게 싫다니까 대신에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후보 사퇴가 속출하며 유세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이젠 또 무관심이 걱정이다.

「지방정치제도는 민주주의의 국민학교」라고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이 「미국민주제론」에서 밝혔다. 그의 이론을 따르면 지방의회선거는 국민학교 입학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지금의 선거분위기는 후보자나 주민이나 모두 마치 취학아동처럼 서툴고 어색하기만 하다. 지방자치의 개념이나 필요성이 실감나게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네 선거의식은 아직까지 제대로 틀이 잡히지 않고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원인은 여러 갈래이겠지만 과거의 풍토를 재음미하고 반성해볼 만하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의식이 제대로 영글지 않았다. 해야 한다고 해서 한 표를 찍는 것이지 꼭 하고자 나서지를 못했다.

선거라고 하면 얼굴부터 굳어지고 관권과 관제 또는 불법과 타락이 연상되는 얼룩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후보끼리의 치열한 싸움은 그렇다 치고,유권자는 부정과 부패에 대한 대결과 저항의식으로 선거의 구도가 뿌리를 내려버렸다. 그러니 잔치마당으로 기분 좋게 이끌어가자고 해야 통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각박하게 전개된 선거전은 그때만 지나면 악몽을 떨쳐버리듯 깡그리 잊어버렸다. 이 망각병이 또한 개혁이나 개선의 장애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문화의 거론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뚜렷한 의식이 없이 문화가 잉태되는 일은 없다.

선거는 권리를 행사하는 민의 것이다. 권리의 주체가 자발적으로 참여,주도하여 주인노릇을 해야 본래의 의미가 살아난다. 정부와 관이 하자고 해서 한다는 식의 수동적 주권행사라면 그 가치는 반감되고 만다.

공정과 공명은 「관의 훈계」가 아닌 「민의 감시」로 잡아가야 민주의 풀뿌리가 생기를 찾는다. 이번 지방의회선거가 새 이정표를 마련하려면 민의 능동적 참여라는 전기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투표결과보다 오히려 이것이 중요하다. 정치인과 정당은 타성에 젖어 선거 결과의 수지타산을 따지기에 급급할 것이다. 그러나 민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선거의식과 풍토를 혁신하는 불문율을 끌어내는 노력이 중대한 과제로 떠오른다. 반갑게도 그런 증후가 조용히 고개를 쳐들고 있다. 민간단체 또는 민간세력의 자각이 행동으로 옮겨짐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닐 것이다.

9개 단체로 짜여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라는 긴 이름의 모임은 시민감시단을 발대시켰다. 보수와 진보가 합세한 기독교의 공명선거대책위원회도 암행감사의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연구관찰의 형식으로 지자제선거 감시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선거는 끝나면 그만이라는 종래의 관념을 타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어진다. 선거 자체도 중요하나 선거의 노하우를 조리있게 체계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폭력혁명을 철저히 배격하고 진심으로 선거혁명을 기대하려면 기초를 다지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헌정의 바탕이 된 권리장전을 만들어냄으로써 절대주의를 종식케 하고 그 성공을 역사에 정착시켰다. 민주발전은 주권자의 의식향상과 발걸음을 같이한다.

정치부패와 불신은 그것을 개탄하고 냉소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거는 민의 것이며 그것을 통해 쉴 새 없이 정치를 감시한다는 인식이 굳게 자리잡아야 불신의 벽이 무너진다. 그 길은 훈계받는 선거에서 스스로 감시하는 선거로 탈바꿈하는 데서 열린다.

우리도 이젠 불문의 선거장전을 만들 때가 왔다. 뼈아픈 고통의 경험이 많이 쌓였다. 열과 냉으로 오락가락할 것이 아니라 조리와 판단으로 선거를 이끌어갈 수 있으면 개혁의 발걸음은 아주 빨라질 게 아닌가…. 선거는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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