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위상강화… 문제는 “그대로”/보·혁 서로 세력권 굳혀/첨예한 갈등 유발 소지/「미 세계 주도」 우려 고르비 중심 타협할 수도소련 역사상 최초로 지난 17일 실시된 「소연방 존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높은 투표율과 지지도를 보여 소련인들은 현행 연방체제의 존속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국민투표는 2억명의 유권자들에게 「소연방이 모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완전보장되는 동등한 주권공화국들의 새로운 연방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를 묻고 있다.
처음부터 국민투표 자체를 반대해온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개 공화국과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몰다비아공화국 등 6개 공화국에서는 투표율 자체가 50% 선을 밑돌 것으로 보이나 러시아 등 나머지 공화국들에서는 지역편차가 다소 있으나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투르크멘공의 경우 약 95%,극동의 하바로프스키가 66%,중앙아시아의 카자흐공 등 4개 선거구가 94% 이상으로 연방존속을 찬성했으며 최대 공화국인 러시아공과 우크라이나공도 찬성률이 약간 더 높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소련의 개표기술상 최종집계는 오는 25일 이후에야 밝혀지겠지만 연방유지의 찬성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선거 직전 중립 인터팩스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공 1억2백만 유권자 중 72%가 투표에 참여할 것이며 그 중 59%는 찬성,31%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응답했었다.
하지만 이번 국민투표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승리로 나타났다 하더라도 소련내의 문제해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번 투표는 연방정부와 각 공화국간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새 연방조약의 성립여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결과를 놓고 볼 때 고르바초프뿐 아니라 군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나 옐친 러시아공 최고회의 의장을 비롯한 개혁파들이 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 동안 화려한 외치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내정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예상 외로 강한 보수·개혁 양진영의 협공에 부딪쳐왔다. 대표적인 예가 시급한 경제개혁안으로 개혁안의 본격시행에 제동이 걸린 것은 바로 각 공화국간의 이해대립과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민족문제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선 강력한 권한이 필요했고,자신의 정치생명까지를 건 국민투표를 택했으며 그 결과 명실공히 「국민의 대통령」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보수파도 이번 선거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공화국의 독립요구 및 민족분규 진압에 앞장서온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보수파인 야조프 국방장관이 투표를 마치고 『연방에서 탈퇴하려는 몇몇 공화국들은 영토나 인구,경제적인 면에서 연방전체의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때문에 주권공화국들의 연합체로서 소련은 지금까지 존속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속될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개혁파도 마찬가지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추진 이후 그의 측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오다 최근 보수파의 공격 등으로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화됐던 개혁파들은 이번 선거로 또 다른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셈이다.
연방조약 문제 외에 독자적인 대통령직선제를 제시한 러시아공의 경우 대통령직선제가 주민들의 승인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시돼 옐친의 입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 공화국에서도 그 동안 개혁파의 입김이 드셌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시 등 대도시에서는 반대표가 많거나 대등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크라이나공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찬성 쪽이 약간 우세했으나 수도인 키예프시에서는 투표자의 60%가 반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번 투표는 어느 쪽도 완전한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각파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식으로 해석할 경우 소련은 국민투표 전보다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걸프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 개편이라는 외부적 압력과 더욱 악화되고 있는 소련의 경제사정 등으로 개혁·보수파간의 첨예한 대립은 모두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란 사실을 소련 스스로가 잘 알고 있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대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국민투표로 고르바초프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이상호 기자>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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