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달리 풀죽은 모습에 불안감 역력/반정소요사태 시인… 배후 이란 비난도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16일 대국민연설은 현재 후세인 정권이 직면해 있는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후세인은 걸프전 패전 이후 처음으로 행한 이날의 대국민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반정부소요가 발생한 6개 남부도시 이름을 거명하면서 이 같은 소요사태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후세인은 이제까지 서방언론의 보도대로 시아파 회교도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남부지역의 소요사태를 진압했으나 북부 쿠르드족 지역에서는 소요가 진행중임을 간접시사했다. 후세인은 이 연설에서 이라크는 「제2의 레바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이 소요사태를 바라보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과 불안감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TV연설광경에서도 나타났다. 걸프사태 이후 여러 차례 있었던 TV연설과는 달리 이날 후세인의 모습에서는 평소와 같은 자신감이나 단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연설원고를 힘없이 읽어내려갔으며 좀처럼 정면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때문에 TV를 통해 후세인의 연설을 지켜본 요르단인들 중에서는 연설자가 후세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적지 않은 정도였다.
연설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연설은 소요사태로 폭발된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내부단합을 호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이날 새로운 헌법과 국민투표,새 의회와 내각개편 등의 포괄적인 민주화 개혁을 약속했다.
이것은 현재의 이라크소요사태의 원인이 걸프전 패전에 대한 일시적인 국민들의 분노보다는 후세인의 장기철권정치에 대한 염증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내전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선 갑작스런 민주화 약속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후세인의 이번 대국민연설은 특히 연설의 상당부분을 북부 쿠르드 반군문제에 할애한 것이 큰 특징이다. 후세인은 1천7백만 이라크 국민 중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이라크 국민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주장하면서 쿠르드 반군을 이라크를 분열시키려는 외부세력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였다. 후세인이 이처럼 쿠르드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쿠르드지역의 소요사태가 후세인정권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인의 이번 연설은 또 이란이 남부 시아파 회교도들의 소요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함으로써 걸프사태를 통해 이루어진 양국의 관계개선이 과거 8년전쟁보다 더욱 악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후세인은 8년전쟁에서 빼앗은 영토까지 반환하면서 화해하려 했던 이란이 남부소요사태의 발판역할을 하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라크 남서부지역을 다국적군에 점령당한 채 이제는 남과 북으로부터 내부도전에 직면해 있는 후세인의 이날 TV연설은 후세인 정권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느낌만을 줄 뿐이었다.<암만=배정근 특파원>암만=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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